안수훈기자 = 반세기만에 그리운 가족들과 만난 남북 이산가족 들은 27일 서울과 평양의 숙소에서 가족, 친척들과 개별 상봉을 갖고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애끓는 혈육의 정을 나눴다.

전날 첫 만남의 흥분으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다시피한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이날 호텔 객실에서 비공개로 열린 개별상봉에서 어릴적 얘기와 고향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 꽃을 피웠고,족보와 반지 등 미리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김경락(金京落)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상무위원을 단장으로 한 북측 이산가족 100명은 오전 10시부터 숙소인 서울 잠실 롯데월드호텔에서 2시간여동안 가족단위로 개별상봉을 하고 점심을 같이하며 회포를 풀었다.

서울을 방문한 전영수(79)씨는 50년동안 수절해 온 부인 유정규(75)씨와 만나 신혼의 단꿈을 회고한뒤 출생한지 1주일만에 헤어진 딸 애일(50)씨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미안함을 표시했다.세브란스 의전 인턴 출신인 전씨는 반세기만에 다시보는 부인 유씨와 다정히 앉아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또 조준기(75)씨는 어머니 유이분(1955년 작고)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반지를 아들 경구(51)씨로부터 전해받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그리움에 북받쳐 다시한번 오열을 터뜨렸다.

정지용 시인의 큰 아들 구관(73)씨는 북에서 온 동생 구인(67)씨에게 시집과 수필집 두 권으로 된 `정지용 전집'과 정 시인이 친필로 쓴 한시 등을 선물로 전했다.

북한 집단체조의 거장으로 알려진 김수조(69)씨는 조카 김복겸씨 등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북한 최고 지도자로부터 받은 각종 상훈등을 꺼내 자랑해보이기고 했다.

또 평양에서는 30여년만에 모녀 상봉을 한 이후덕(77)씨가 딸 성경희(55)씨와 사위 임영일(58.김일성종합대 교수), 외손자, 외손녀가 참석한 가운데 숙소에서 다음달 6일인 생일 파티를 앞당겨 열어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이씨는 이제 반백이 넘은 딸에게 선물로 준비해간 핸드 백을 주었다. 이 자리서 인민군복을 입은 외손자는 난생 처음 만난 외할머니를 업어보기도 했다.

국군포로 출신인 손원호(75)씨와 김재덕(69)씨도 각각 남한에서 온 동생 준호(67)씨와 재조(65)씨를 다시 만나 기념사진 등을 찍으며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했다.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김유감(77.여)씨는 개별 상봉에서 북에 두고온 두 딸 김순영(56), 순복(53)씨를 만났으나 꿈에도 잊지못하던 아들이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자 두 딸을 원망하기도 했다.

김씨는 '아들이 오지 못하면 며느리라도 아니면 손자,손녀자로 와야지'라면서 울부짖었다.

그러나 남측에서 치매로 고생해온 손사정(90)씨는 수십년만에 헤어진 가족을 만난 흥분탓인지 탈진 상태에 빠져 이날 새벽 동평양 문수거리 친선병원에 입원,병원에서 가족들과 상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은 오후에는 각각 창덕궁과 평양교예극장의 교예공연을 관람하고 저녁에는 가족들과 다시 만나 식사를 함께한뒤 고향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양측 방문단은 이어 28일 오전 숙소인 롯데월드 호텔과 고려호텔 앞에서 가족들과 석별의 정을 나눈뒤 남측의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각각 귀환한다.

한편 김 단장 등 조선적십자회 관계자들은 이날 낮 서영훈(徐英勳)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방문, 환담을 나누고 향후 이산가족 상봉일정 등에 대해 협의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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