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는 조병칠입니다. 만나서 기쁩니다.' 어릴적 장티푸스를 앓아 말을 못하게 된 아들은 50년만에 아버지를 만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쪽지 위에 글로 써내려갔다.

26일 오후 평양 고려호텔에서 전쟁통에 아들 조병칠(57)씨를 고향 평북 영변에 두고 온 뒤 50년이 지난 뒤에야 만난 조구연(90.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씨는 아들이 전달해준 쪽지를 곱게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헤어질 때 서너살 밖에 안돼 얼굴 윤곽마저 흐려지는 것 같아 애태웠는데...' 50년의 세월이 부자를 갈라놓았지만 흡사 자신의 얼굴을 닮은 아들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훔쳤다.

해방된 뒤 서울과 고향을 오고가며 장사를 하던 조씨는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 큰아들만 데리고 서울로 내려왔다.

막내아들은 아직 4살밖에 안된데다 장티푸스에 걸려 아내와 함께 고향에 두고 왔다. 그러나 이것이 50년 생이별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평양으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들 병칠씨가 말을 못한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던 조씨는 상봉장에서 아들이 말을 못하고 눈물만 흘리자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한 채 눈물만 훔쳤다.

함께 상봉장에 나온 여동생 하연(73)씨와 손녀 영숙(27)씨가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조씨를 위로했다.

특히 손녀 영숙씨는 '얼마 있으면 증손자가 태어난다'고 말하자 조씨는 기뻐하면서 손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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