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발표에 대한 미국의 공식반응은 환영 일색이다. 그러나 10일 하루동안 숨가쁘게 전개된 미국측의 움직임을 자세히 지켜보면 공식반응과는 다른 분위기도 느껴진다.

한가지 예로 미국은 올브라이트 장관의 환영성명 세번째 단락에서 “미국과 한국, 일본은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와 미사일에 대한 공통의 우려를 논의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논의하기를 기대한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남북정상회담은 아직 의제가 결정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측이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은 미국의 최우선의 이익에 기여해야 한다”는 기본입장을 갖고있는 미측의 주문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미국은 ‘장미꽃’축하선물 속에 ‘가시’까지 넣어 보내온 셈이다.

이날 국무부의 브리핑에서 몇몇 미국기자들은 국무장관의 성명내용이 바뀐 점을 지적해서 국무부측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날 아침 대변인이 사전에 알려준 성명 내용중 ‘남북정상회담은 역사적 사건이 될 수도 있다(could be)’라는 표현이 ‘남북정상회담은 역사적 사건이 될 것(will be)’이라고 변했다는 주장이었다.

미국 기자들은 이런 수정이 한국 정부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눈치였다.

이날 국무부와 백악관 브리핑에서 미언론들은 “북한의 김정일이 하필 이 시점에서 정상회담을 수용한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과 “이미 결정된 미·북 고위급 회담은 물건너 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던졌다. 이에 미 정부 당국자들은 궁색한 답변만 되풀이했다.

워싱턴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에 대한 한·미·일 3개국의 공조시대가 3개국 경쟁시대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최근의 한반도 관련 움직임에 대해 한 북한전문가는 “북한은 이곳 저곳에서 연기만 피우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효상 워싱턴특파원 hsk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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