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마음은 복잡하다. 두고온 부모와 친구들의 얼굴이 못 견디게 그립고 그날 그날의 끼니를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마음 더욱 아프다. 엄격한 검열을 거쳐 들어간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광우병과 방사능오염까지 그들이 뒤집어 쓰나 하는 과민증에 두고온 아들이 광우병에 걸리는 꿈까지 꾸는 형편이다.

나는 이미 북한의 아름다운 강산이 파괴되고 오염되는 적나라한 현실을 본 적이 있다. 1995년 6월경이었던 것 같다. 기자생활을 했던 나는 함흥의 흥남비료공장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잘 포장된 커다란 컨테이너가 겹겹이 쌓여 있는 광경을 보았다. 프랑스에서 들어온 쓰레기 박스였다. 쌀 실은 배가 들어오나 해서 나왔던 운수용 대형 자동차들은 그나마 실어나를 것이 있어 다행이라고 좋아하며 쓰레기를 실어올리고 있었다.

얼마나 압축해 실었던지 풀어놓은 쓰레기는 거의 높이 20m, 둘레는 사방 200m에 퍼져 있었다. 쓰레기무지에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모여들었다. 나 역시 혹시 쓸 물건이 있을까 달려갔던 기억도 있다. 북한 사람들 눈에는 도무지 쓰레기로 보이지 않는 온전하고 희귀한 물건들도 많았다. 플라스틱, 비닐, 아이들 장난감, 그밖에 여러 가지 전자제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운 좋은 사람들은 한몫을 챙겨갈 수도 있었다. 나는 커다란 비닐주머니 하나를 골라냈는데 요긴하게 썼다.

네 곳에 흩어져 쌓여 있는 흥남항의 쓰레기무지에서 쓰레기를 쓸어담은 자동차들은 전국 각지로 실어날랐다. 나중에 평남 안주에 갔다가 흥남에서 보았던 그 외국 쓰레기들이 청천강 기슭에 널려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북한 땅 어느 장마당에서든 그 쓰레기더미에서 찾아낸 쓰레기 봉투들이 상품으로 탈바꿈해 팔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구 하나 국가적 자존심 같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비닐제품이 매우 귀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북한에서 누가 그런 것을 문제 삼겠는가.

쓰레기까지 일일이 검열해서 보낼 리는 없을 터. 이런 일이 계속되면 오염뿐 아니라 전염병도 염려된다. 오염 없는 심심산골에 목장을 차려 놓고 광우병은 커녕 어떤 유해물질도 없는 깨끗한 소를 길러 고기를 먹는 북한의 특권 상층부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죄악적이며 위험한 그들의 처사로 인해 희생되는 북한의 평범한 사람들과 북녘 땅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김현수(가명ㆍ2000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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