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둔 남북 합의서는 남북에서 발표한 것이 같은 문맥의 동일 서면이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데 남에서 발표한 합의서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에 따라’로 돼 있고 북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로 다르게 발표하고 있다. 만나면 그만이라는 결과론이라면 몰라도 만난 다음 현안을 두고 당기고 놓고 할 때에 부른 쪽과 불린 쪽의 자세는 달라진다.

협상의 술수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 ‘손자(손자)’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 첫째, 협상 마당에서 아쉬워하며 집요하게 달려들지 말라고 했다. 상대에게 속마음이 보여 역이용당할 좋은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얻어내고자하는 욕심일수록 절제하라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파폼의 법칙’이라 하여 외교의 조건이 되고 있는 가르침이 있다. 1000루블만 내고 온종일 걸어 해지기 전까지만 돌아오면 그 걸어가 이른 지점 이내의 모든 땅을 준다는 말에 욕심 많은 농부 파폼이 보다 많은 땅을 차지하고자 멀리갔다가 숨가삐 돌아오느라 숨지고 말았다는 러시아 민화(민화)의 주인공이다. 곧 파폼에게 필요한 땅은 그가 묻힌 무덤 자리가 전부라는 교훈의 원용인 것이다. 셋째, 성급하게 굴면 백번 이용당하고 상대방의 술수에 넘어가게 돼 있다는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 상대하고 앉지만 아쉬움이 덜한 불린 쪽보다 아쉬움이 더한 부른 쪽에서 범할 수 있는 가르침들이란 점에서 이 상이한 문서 표현이 불씨를 안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 예비접촉에서 이번에 발표된 문건을 ‘남북 합의서’로 합의를 본 것은 이치에 맞고 잘한 일이다. 따라서 회담호칭도 남북 정상회담이라야 하는데 북에서는 북남 정상급회담으로 방송 보도하고 있다. 동서남북 방위는 평등하지만 동서(동서)할 때 동을 서에 선행시키고, 남북(남북)할 때 남을 북에 선행시키는 것이 한자문화권에서의 법도다. 남북조(남북조) 남북전쟁(남북전쟁) 남선북마(남선북마) 남남북녀(남남북녀)―하지 북남조 북남전쟁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감정에 미묘한 반응을 일으키는 현안인지라 이의를 제기하면 회담장소가 북일 때 북남회담, 남일 때 남북회담으로 절충해 합의를 보아도 될 일이라고 본다. 화합하려는 회담인지라 상반(상반)표현부터 합의하여 그 성과에 좋은 예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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