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8년 5·1절 경축행사가 끝난 뒤 평양 교외 호수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오른쪽)과 벽초 홍명희 선생이 뱃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이 사진은 최근 북한 ‘통일신보’에 게재됐다.

북한에 생존해 있는 벽초(碧超) 홍명희(홍명희·1888~1968)의 둘째 며느리(정경완·84)가 최근 북한의 신문 통일신보에 벽초 일가와 김일성간에 얽힌 일화를 상세하게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벽초는 일제시대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냈고, 1928년부터 39년까지 12년동안 세 차례에 걸쳐 조선일보에 장편소설 ‘임꺽정’을 연재했으며, 38년 조선일보가 벌인 향토문화조사사업에서 편집위원을 맡기도 했다. 벽초는 48년 4월 남북 연석회의에 참석한 뒤, 북에 남아 초대 부수상 등 요직을 지냈으며, 다른 가족들도 벽초가 월북한 직후 평양으로 이주했다.

조선일보 조사부장·논설위원·학예부장 등을 지낸 장남 기문은 북에서 이조실록을 완역하는 등 국문학자로 활동했고, 차남 기무는 북한 사회과학원 소장 등을 역임했다. 손자인 석형은 함북도당 책임비서로 있으며, 석중은 ‘황진이’를 쓴 소설가이다.

벽초와 김일성간의 일화를 소개한 정경완씨는 지난 1950년 전쟁 때 납북된 위당(爲堂) 정인보의 둘째딸로, 정양모(70) 문화재위원장의 누나이기도 하다.

정씨에 따르면 벽초는 48년 4월 김일성의 초청으로 아들 기무씨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했는데, 김일성이 벽초를 행사 주석단에 앉히고, 연설까지 하도록 했으며, 이 행사 직후 벽초가 김일성에게 ‘북에 남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벽초는 김일성이 58년8월 권력장악을 위해 주도한 이른바 ‘종파사건’에서 양반출신의 인텔리라는 이유로 위기에 몰렸으나, 김일성의 도움으로 자리를 유지했다. 당시 김일성은 “홍 선생의 성분이 어떻단 말인가, 과거 ‘림꺽정’을 썼으면 또 어떻단 말인가, 왜정세월에 일본과 타협하지 않았으니 애국자가 아닌가, 그리고 8·15 이후에 제국주의 편으로 따라가지 않고 우리를 찾아왔지 않았느냐”며 벽초를 감쌌고, 그 후 요직에서 계속 일하도록 했다는 것.

정씨는 또 김일성의 전처인 김정숙은 대동강 기슭 2층에 위치한 벽초의 집에 비단 이불과 쌀, 재봉틀 등 세간살이를 보내주는 등 상당한 ‘배려’를 했다고 전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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