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플 주사인가, 보약성 호재인가?”

남북(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메가톤급 호재가 발표된 10일 여의도 증권가는 온통 북새통이었다. 증권사 직원들은 출근하자마자 발표의 진위를 확인하느라 분주했고, 투자가들은 오전 10시 TV 발표를 귀기울여 들은 뒤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인지, 앞으로 어떤 종목이 뜰 것인지 여기저기서 즉석 토론을 벌였다.

이날 서울 시장은 예상치 않은 대형 호재에 여의도 고수부지의 벚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남북정상회담은 사실 여러 차례 나왔던 해묵은 소재이지만, 10일 증시가 뜨겁게 반응한 것은 과거보다는 개최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LG투자증권 김주형 상무는“과거 정권과 달리 이번에는 남북 양측이 공동발표 형식을 통해 정상회담 일자를 못박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투자자들의 기대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증권전문가의 표정은 객장의 투자가들과는 달리 비교적 무덤덤했다. 시장을 계속 이끌어 나갈 재료로 꼽기보다는 일과성 재료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더 많았다. 외국인투자자들의 반응도 무덤덤했다.

제임스 피 루니 전(전) 템플턴투신운용 사장은 “남북 정상회담 발표가 증시에 약간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실제로 정상회담이 이뤄질 때까지 불확실성이 많아 주가가 출렁거릴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의 주식시장에는 정치적인 요소보다는 금융·기업구조조정이 어떻게 되느냐가 10배는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호재=전문가들은 이번 발표로 남북 관계 긴장에 대한 우려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가장 큰 호재로 꼽고 있다. 대우증권 신성호 투자전략부장은 “특히 외국인 투자가는 국가 위험도(country risk)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 “남북 정상회담으로 국가 위험도가 줄어들어 외국인이 보다 안심하고 한국시장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대증권 리서치센터 정태욱 이사는 “이번 조치로 남북 경협이 본격화할 뿐만 아니라 길게 보면 중국과의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고, 외국 기업의 한국에 대한 직접 투자가 늘어나며, 방위비 지출이 줄어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남북 관계 호전 정도에 따라서는 노동집약 산업을 북한에 이전시킴으로써 국내 산업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북한 경제도 함께 성장하는, ‘누이좋고 매부좋은’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발표의 타이밍도 주식시장만 놓고 본다면 절묘했다는 지적이다. 정치적으로는 선거를 목전에 두고 발표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주식시장에서는 폭락 후 자율반등이 기대되는 시점인데다, 기술주 붐이 한풀 꺾인 뒤 주도주가 없던 상황에 발표가 나와 모양새가 좋다는 지적이다.

◆당장 효과를 논하기는 시기상조=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날 발표만으로 기업 실적이 금방 향상되고, 주가도 계속 오를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개최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긴 과정의 시작’일 뿐이며, 남북 경협이 진전돼 기업들이 실질적 혜택을 보기까지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설명이다.

ING베어링증권 함춘승 전무는 “남북 경협이 이뤄지더라도 투자자금 조달이 어렵고 회수기간이 길어 오히려 증시에 악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이 “중동 특수(특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북한) 특수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북한 특수는 현찰 지급이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중동 특수와는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지훈기자 jhl@chosun.com

/박종세기자 j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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