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만주 일대 항일(抗日)투쟁의 명장으로 널리 알려진 양세봉(1896∼1932)의 손자 철수(47)씨가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현역작가로 일하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눈길을 끈다.

남한에서 김좌진 장군, 북간도에서 홍범도 장군이 항일영웅으로 회자된다면 일제시대 조선독립군을 지휘하던 사령(司令)으로 활동한 양세봉은 남만주 일대에서 전설적 인물로 칭송되고 있지만 그의 묘가 평양시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있는 탓에 남한에는 많이 소개되지 않은 인물이다.

그의 직계손자인 철수씨는 소아마비로 인한 하반신 마비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조선작가동맹에서 문학작품을 창작하고 있다.

19일 평양방송에 소개된 철수씨의 수기에 따르면 그가 작가로 성공하기에는 항일영웅인 할아버지와 공군 지휘관으로 근무하다 사망한 아버지 량의준의 `후광'이 크게 작용했다.

김일성 주석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양의준(양철수의 아버지)은 아들 하나를 남기고 돌아갔다. 그 아이의 이름을 량철수라고 하였다. 그런데 철수는 소아마비의 후과(나쁜 결과)로 불구의 몸이 되었다...양철수에게는 2남 1녀의 자녀들이 있다. 혈통을 따지면 양세봉의 증손자, 증손녀들이다'는 기록을 남겼을 정도이다.

그는 항일투쟁 집안이라는 `큼지막한' 배경을 등에 업고 휠체어에 몸을 기댄 채 인민학교, 고등중학교, 김일성종합대학 어문학부 창작과를 졸업했다 병약했던 그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는 할아버지 양세봉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 김 주석의 관심이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밝혔다.

해방 직후 양씨 일가를 수소문해 찾은 김 주석은 철수씨의 아버지 의준씨를 혁명유자녀들이 다니는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주고 공군지휘관으로 키워낸 것은 물론 `불치의 병'으로 거동하지 못하는 철수씨에 대해서도 각종 의료 조치를 취해준 것으로 그는 회고했다.

김 주석은 또 지난 58년 5월 철수씨의 할머니(양세봉의 부인)와 그를 초대한 자리에서 '이 애가 양 사령의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데 힘든 병에 걸렸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꼭 고쳐야 하겠다'고 강조했는가 하면 지난 60년 3월에는 병 치료에 쓰라고 산삼을 선물하기도 했다.

철수씨는 대학을 졸업하게 된 것이 그의 할아버지 업적을 높이 산 김 주석의 관심에 의한 것이라면 작가로 활동하게 된 것은 할아버지를 높이 평가한 김 총비서의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북한 지도층의 `배려'로 지난 77년 9월 작가동맹 작가로 입문한 그는 현재까지 현역 작가로 일하고 있고 지난 81년 10월에는 그 동안의 노고를 인정받아 노동당에 입당까지 했다.

현재 그의 맏아들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둘째 아들은 만경대혁명학원을, 외동딸은 평양음악무용대학에 각각 다녔거나 재학중이다.

의 대표작으로는 수기 「나를 키워주신 품」(1988), 수필 「아이들과의 약속」(1991)ㆍ「대지와 나무」(1994) 등이 꼽힌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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