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장쩌민(강택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의 회담, 김 위원장의 상하이(상해) 산업단지 방문 결과에 대한 이례적인 북한 방송들의 보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이는 북한의 ‘체제유지·경제회생’이라는 ‘체제수호적 개방’의 강한 메시지이다.

첫째, 부시 미 행정부의 출범 등 환경 급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외협력 개선 노력의 대외 홍보 필요성과, 둘째, 실질적으로 경제회생을 위한 북한 지도부의 시급한 개혁·개방의 준비에 대한 내부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렇게 볼 때 향후 북한 개혁·개방은 중국식을 교과서로 할 것임을 예시하고 있으며, 개성·남포에 ‘남한기업 전용공단’을 조성하고 남측 기업의 투자를 요청하고 있어 중국식 경제특구 방식으로 경제개방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상해는 천지개벽됐다”, 또는 “과거 상해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현대적으로 변모됐다”라고 한 표현에서 북한 지도부의 상하이 쇼크를 인지할 수 있다.

체제전환국(transition economies)들의 개방 유형을 보면 정치·경제·사회를 동시 개방하는 구소련식 개방과, 소위 ‘새장 이론’에 따라 정치체제는 유지하되 경제에 시장개념을 도입하는 중국식 개방으로 구분된다. 북한이 중국식을 추구해도 대내외 환경의 현실적 차이가 있어 ‘제2의 중국화’에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 철저한 상호주의를 요구하는 부시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테러 지원국 해제, 미사일 문제 등 경제제재 완화조치와 연계된 향후 회담성과가 북한의 외자유치의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중국은 풍부한 자원과 12억 인구의 내수시장을 확보하고 있으며, 시장경제 접목과정에서 그간 홍콩과 해외 화교자본을 활용,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남한의 정치·경제 사정으로 볼 때 북한의 변화가 초래할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따라서 남한의 대북 경제협력 정책범위를 한정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다. 98년 「국경없는 의사회」의 대북 의료팀 철수, 작년 유럽 지식인 30명의 북한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호소, 금년 독일 응급의사회 소속 폴러첸 박사의 북한 인권에 대한 고발 등을 볼 때 국제적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북한은 생산수단 소유에 있어 개인 소유로의 회귀 및 시장조절기능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즉, 물질적 유인보다는 정신자극을 중시한다. 따라서 북한이 중국이 추진해온 경제부분에서의 민주개념, 시장에서의 수급개념, 다원주의 개념을 추구하지 않는 한, 북한의 개혁·개방은 국가중심의 부분적인 개방의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 대외정책의 추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북한이 처한 현실은 ‘우리 식 사회주의’라는 ‘자립 이데올로기’의 구호로 주장되고 있지만, 향후 북한의 대외정책 변화 전망은 더욱 정책결정의 대외의존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식량난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통해, 에너지난은 미국이 핵 동결의 대가로 지원하는 중유와 경수로 건설을 통해, 외화난은 향후 산업구조 조정과 수출 증대, 그리고 외자 유치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전환기 전략은 자본주의 시장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강성대국’을 건설할 것인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정책선택은 지경학적으로 보아 한국·중국·일본 등 인접국가의 영향을 받으며 사회주의를 지키면서 외부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지역 중력모형(gravity model)에서 찾을 것이다.

(명지대학교 교수)

조선일보 2001년 1월21일자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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