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위한 치밀한 사전준비를 정부에 지시했다는 보도가 있다. 시의적절한 조치로 생각된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6·15 ‘남북공동선언’에 담겨진 합의사항인 만큼, 당연히 실현되어야 하는 일이다. 더구나 북한에서의 독재자로서 김 위원장의 위치를 고려한다면 분단관리 차원에서 일어나는 남북간의 현안들을 해결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오는 것은 반대할 필요도 없고 또 반대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조치들이 있다. 첫째로는, 작년 6월의 평양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과 또 남북관계에 임하는 북측 입장에 관하여 그 동안 김 대통령이 우리 국민들에게 설명한 내용들에 관한 문제이다. 김 대통령은 평양 방문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일원칙’과 ‘통일방법’에 관한 북측의 종래 입장에 변화가 있었고, 그와 김 위원장 사이에 ‘전쟁을 하지 않는다’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또한 북측이 더 이상 ‘주한미군의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연방제통일 합의’ 등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기이한 현상은 그 동안 이 같은 문제들에 관하여 김 대통령의 일방적인 ‘설명’은 있었지만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이에 대한 김 위원장의 ‘화답’이 어떠한 형태로도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 답방을 앞두고 김 위원장은 이 같은 김 대통령의 ‘설명’에 대해 그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나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남북대화도 성패를 가름하는 최종적 관건은 투명성의 확보 여부에 걸려 있다. 이 같은 투명성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북측 김 위원장의 ‘입장’이, 정작 김 위원장 자신은 침묵을 고수하는 가운데, 남측 김 대통령에 의해 ‘대변’되고 ‘설명’되는 비정상적 상황에 이제 종지부가 찍혀야 한다.

둘째로는,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실현될 경우 그를 어떻게 ‘환영’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작년 6월 김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북측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북한식 환대’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역으로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때 우리는 결코 서울에서 ‘북한식 환대’로 그를 맞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양성과 임의성, 그리고 자율성에 입각한 자연발생적인 ‘우리식 환대’로 그를 맞이해야 한다. 앞으로 평화적 통일은 물론 남북간 과도적 평화공존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은 쌍방이 과연 상호 체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것인가의 여부에 걸려 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그 같은 체제의 차이를 실감하는 기회가 되어야지, 행여라도 관제 환영을 조직함으로써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우리 체제를 오해하는 기회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셋째로는,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앞서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정비하는 문제이다. 국가정보원은 남북관계의 긍적적 측면을 관리하는 기관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부정적 측면에 대처하여 만일의 불상사에 대비하고 대처하는 위기관리 기관이다. 그런데, 지금의 국가정보원은 사실상 원 전체가 남북대화 지원기구로 변모하여 혹시라도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활동은 일체 자제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 사실이라면, 이것은 국가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다. 국가정보원이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여 북측이 이를 두렵게 여길 때 비로소 남북대화도 실질적인 진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명고’를 찢은 ‘낙랑공주’를 끌어안은 채 ‘호동왕자’를 맞아들여 나라를 잃었던 낙랑국왕 최리의 비극적인 역사적 고사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명지대 객원교수·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조선일보 2001년 2월7일자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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