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사설
부시 시대의 ‘북한다루기’...매닝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1.02.0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작년 평양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전 국무장관을 만나고, 지난달 중국 상하이를 방문해 경제개혁을 높이 평가하는 등 활발한 외교를 펼치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북한이 변화하리라는 기대들이 나오는 가운데,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그 의중을 읽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북한이 긍정적으로 변한 게 사실인지를 판단하는 열쇠는 두 단어, ‘상호주의(reciprocity)’와 ‘투명성(transparency)’이다. 경수로 2기 건설과 연료를 대주는 대가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중단시킨 94년 미북 핵협상 이후, 상호주의와 투명성은 합의의 큰 틀로서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됐다.

퇴진 무렵 클린턴 행정부는 대북한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만족감을 나타냈다. 스탠리 로스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지난달 퇴임연설에서 “이제 한국문제에 있어 조지 W 부시 새 행정부의 과제는 그동안의 성과를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클린턴이 일궈낸 ‘성공’은 북한 문제를 길 옆으로 잠시 밀쳐내 시간을 번 것에 불과했지, 해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클린턴은 핵과 미사일 문제를 그 상태로 밀봉, 연기시켰을 뿐이다. 사실 클린턴은 부시 행정부에 시한폭탄을 남기고 떠났다. 미북 핵협상에 따라 북한은 핵무기 개발계획의 공개 시기를 늦출 수 있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기준에 맞는 사찰도 피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서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문제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지가 관심사다. 하지만 그 변화가 어떤 것이든, 부시 행정부는 과거를 검토하면서 핵협상의 새 틀을 짤 것이다. 평양이 서울에 요구한 200만㎾의 전력이 2기의 경수로가 만들어낼 수 있는 전력과 정확히 일치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이는 북한이 더 빨리 전력을 얻고 싶기 때문에 제네바협정을 재고하고 있다는 신호이다.

평양이 왜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하고 2기의 경수로를 요구했는가는 수수께끼이다. 아마도 그것은 전력난 때문일 것이다. 지금 북한은 일러야 2003년에야 세워질 40억달러의 경수로보다 더 싸고 신속한 전력을 원할 만큼 심각한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경수로 건설과 관련한 기술적·법적 문제들로 인해 첫 번째 경수로 건설이 2007년 이후로 늦춰지게 됐다. 게다가 북한의 낡은 송전망은 경수로로부터 얻은 전력을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만일 북한이 중국식의 개혁과 개방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면, 전력난을 해결해 외국자본을 끌어들일 만한 여건이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화력 발전소라면 한국전력공사가 15~18개월이면 세울 수 있다. 평양측은 2기의 경수로 중 적어도 하나를 화력 발전소로 대체하는 데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핵심참모들도 이러한 평양의 제의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 궤도수정에 대해 미온적인데, 나는 그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태도는 북한이 IAEA와 협력, 핵협상을 진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비밀리에 준비해온 핵무기 개발계획은 경제적인 기반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하다. 소련은 3만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한국이 김정일의 서울 답방을 준비하고 미국이 미해결된 미사일 협상 추진에 들어감에 따라, 제네바협정은 북한의 의도를 알아내는 중요한 시험으로 남게 됐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은 막대한 양의 연료와 10억달러에 달하는 식량 등을 북한에 원조했으나, 북한이 IAEA에 순순히 협력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이 다음달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날 때,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 의견접근을 보아야 할 것이다. 이 합의는 북한에 대한 경제 원조를 대가로 군사적 위협을 줄이는 상호적인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 부시 행정부가 남북간 화해를 정책 목표로 삼아 지지할 것이라는 징후들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해 당장 급한 전력을 제공해주려고 핵협상에 수정을 가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돼야 하며, 한국과 미국은 통일된 자세를 취해야 한다. 북한이 약속을 어기고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다면, 평화는커녕 진정한 남북 화해도 이루어질 수 없다.

(로버트 매닝·미 외교협의회(CFR) 수석연구원) (정리=박돈규기자 coeur@chosun.com)

조선일보 2001년 2월8일자 국제정치진단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  Tel : (02)724-6650,6523  |  E-mail : nkchosun@chosun.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SITE_MANAGER
Copyright © 2013 NK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