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3월 7일로 확정되고,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도 그 이후로 잡히게 되는 모양이다. 그 동안 정부가 김정일의 답방을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김정일의 답방은 김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1차 정상회담이 화해와 공존의 의지를 과시하는 선언적 행사였다면, 2차 회담에서는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제도화하기 위한 구체적 내용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2차 회담에서는 평화선언을 채택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정부가 평화선언이 갖는 복합적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고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지 걱정이다.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은 단순한 선언이나 합의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혼자의 구상이나 의지만으로 풀려해도 풀어지지 않는다. 한반도의 분단 그 자체가 국제적 기원을 갖고 있으며, 남북간의 정치·군사관계 역시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 얽혀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긴밀한 협의가 선행되어야 하며 중국 등 주변 국가들과도 공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남북간 실무차원의 협상이 원만히 진행될 때 비로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정상회담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국내여론 수렴이나 미국 등 우방과의 협의를 적당히 하거나 아예 생략한 채 모든 것을 정상회담에서 풀려한다는 인상을 주어왔다.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획일적 상의하달의 방식이 주류였다. 정책 결정 과정도 투명하지 않았으며 일을 추진하는 방식 역시, 마치 정해진 목표를 향해 돌격이라도 하는 것처럼 밀어붙여왔다. 1차 정상회담 이후 불거져 나온 한·미 간의 불협화음이나 국내의 비난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충분한 준비나 협의과정을 빠트린 채 정상회담의 조기 추진에만 매달린 듯하니까 우방이나 국민들도 그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달라져야 한다. 1차까지는 그렇다 해도 2차부터는 이런 방식이 더 이상 통할 수 없다. 여론을 수렴하고 미국 등 우방과의 협의도 충실히 해야 한다.

3월 7일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통상문제를 포함한 양국간의 다양한 현안들이 논의될 것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김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역시 남북문제이며 김정일의 답방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가 갖고 있는 대북 정책구도와 전략이 될 것이다. 특히 평화선언이든 또는 다른 형식이든 간에 2차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문 속에 담길 구체적 내용이나 그 실천 방안들에 대한 우리 측 설명을 듣고 싶어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의 관심사들,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문제 해결, 대북 전력지원 및 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른 대북 경수로 사업과 장기적으로는 한·미 동맹의 장래에 미칠 영향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이번 한 번의 정상회담에서 다 풀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 부시 행정부는 외교안보 진영도 다 갖추지 못했고 대한정책 역시 구상단계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앞으로 실무수준에서 협의를 진행시켜야 하며 정상 차원에서도 대화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양국간 고위실무협의회를 가동시키기로 합의했으며, 한·미 정상회담도 적어도 금년 가을에 한 차례 더 있을 것이다. 주변정세 역시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등이 남아 있다. 김 대통령은 부시를 만나든 김정일을 만나든 서두를 필요가 없다. 외교의 제1 원칙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안보의 경우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 아주대 교수·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

조선일보 2001년 2월18일자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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