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한 언론사 사장단에게 밝힌 내용들은 여러 측면에서 ‘파격적’이다. 통일 문제부터 경협, 사회·문화 교류, 이산가족 문제 등에서 거침없이 ‘화해’ 의지를 과시했고, “언론이 잘 써줘야 한다”며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의도도 드러냈다. 또 그의 발언에선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무소불위 1인자의 모습도 감지됐다.

김 위원장은 우선 8월 말로 예정된 2차 장관급회담(평양) 후 “3차 때부터는 속도를 높여나가겠다”고 말해 남북관계의 전망을 밝게 했다. ‘적화통일’을 명시하고 있는 노동당 규약 개정 가능성을 재확인하면서, 국가보안법과 연계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대목도 눈여겨 볼만하다. 북한은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철폐를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내걸었었다.

남북경협에 대해선 경제적인 관점보다는 의리, 신의 등을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현대는 맨먼저 우리와 거래를 했고…”, “소를 갖고 왔는데 성의를 무시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고, 현대에 특혜를 줬다고까지 했다. 앞으로도 선물을 주는 기업과의 경협에 주력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 같다.

경의선 철도 연결, 한라산 관광, 금강산과 설악산 연결 등에 대해서도 상당히 적극성을 나타냈다. 심지어 교류의 종착점인 통일문제까지 “그건 내가 맘먹을 탓”이라고 했다. 그러나 남·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접촉하고 왕래할 수 있는 대규모 인적 교류와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와 관련, 아직 전면 개방까지 결심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상당기간 변화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면서도, “변화에 따른 내부 통제가 어려우면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권력 원천을 군력(군력)이라고 말해 여전히 군부에 의한 통치의지를 드러냈다. 1인 집중 형식의 정치체제를 당연시하고 있는 셈이다.

대(대)서방 외교에선 자주성, 자존심 등을 자주 거론, 교조적(교조적) 관점을 드러냈다. 미국과는 ‘테러국 리스트’에서 해제되면 곧바로 수교하겠다고 밝혔으며, 일본과는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을 자존심과 연결시키기도 했다. 시드니올림픽에 남북정상이 공동 초청받은 것과 관련, “시드니에 가서 배우노릇하는 것보다…”라고 말해 아직 국제감각에 익숙치 않음을 노출했다.

그는 언론사 사장단을 만나 왜 이러한 이야기를 했을까? 전문가들의 해석은 엇갈리고 있다. 송영대 전 통일부 차관은 “남한 사회에 연공의 분위기를 만들려는 평화공세”라며 ‘전략적 접근’으로 풀이했으며,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남한 상층부를 겨냥한 통일전선전술로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종연구소 이종석(리종석) 연구위원은 “북한이 생존을 위해 전략적 변화를 선택했음을 재확인했다”며 남북관계의 진전을 낙관했다.

/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200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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