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3일 오전부터 김 대통령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 접견실에서 20분 가량 상봉을 겸한 1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양측의 입장을 교환했다. 김 위원장은 손님을 맞는 주인의 입장에서 비교적 많은 말을 건넸고, 김 대통령은 손님이라는 점을 의식해 김 위원장의 말을 받아 진지하게 남측의 방침들을 전달했다. 다음은 두 정상이 나눈 대화록 전문.

김 대통령=(응접실 벽에 걸린 대형 그림을 보면서) 무슨 그림들입니까.

김 위원장=원래는 춘하추동 그림입니다.(전금진 아·태평화위 참사가 “묘향산의 춘하추동을 그린 것입니다”라고 설명), (김용순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을 향해) 용순 비서, 김 대통령과 자동차를 같이 타고 오느라 수행한 장관들과 인사를 못나눴어요. (남측 공식 수행원들을 향해) 평양 방문을 환영합니다. 통일부 장관은 TV에서 봐서 잘 압니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보고) 남북정상회담 북남 합의 때 TV로 많이 봤습니다. (김용순 위원장이 임동원 대통령특별보좌역에게 공식수행원 소개를 부탁했고, 임 보좌역이 차례로 장관을 소개. 그때마다 김 위원장은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김 위원장=날씨가 대단히 좋고 인민들한테는 그저께(11일) 밤에 김 대통령의 코스를 대줬습니다. 대통령이 오시면 어떤 코스를 거쳐 백화원 초대소까지 오실지 알려줬습니다. 준비 관계를 금방 알려줬기 때문에 외신들은 미처 우리가 준비를 못해서 (김 대통령을 하루 동안) 못오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인민들은 대단히 반가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와서 보고 알겠지만 부족한 게 뭐가 있습니까.

김 대통령=이렇게 많은 분들이 환영 나와 놀라고 감사합니다. 평생 북녘 땅을 밟지 못할 줄 알았는데 환영해줘서 감개무량하고 감사합니다. 7000만 민족의 대화를 위해 서울과 평양의 날씨도 화창합니다. 민족적인 경사를 축하하는 것 같습니다. 성공을 예언하는 것 같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중나온 시민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김 위원장=오늘 아침 비행장에 나가기 전에 TV를 봤습니다. 공항을 떠나시는 것을 보고 대구 관제소와 연결하는 것까지 본 뒤에 비행장으로 갔습니다. 아침 (김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계란 반숙을 절반만 드시고 떠나셨다고 하셨는데, 구경 오시는데 아침식사를 적게 하셨나요.

김 대통령=평양에 오면 식사를 잘 할 줄 알고 그랬습니다.(웃음)

김 위원장=자랑을 앞세우지 않고, 섭섭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외국 수반도 환영하는 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도덕을 갖고 있습니다. 김 대통령의 방북길을 환영 안할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예절을 지킵니다.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고파서 인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김 대통령의 용감한 방북에 대해서 인민들이 용감하게 뛰쳐나왔습니다. 신문과 라디오에는 경호 때문에 선전하지 못했습니다. 남쪽에서는 광고를 하면 잘 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실리만 추구하면 됩니다. ‘왜 이북에서는 TV와 방송에 많이 안나오고 잠잠하느냐’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와서 보면 알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방북을 지지하고 환영하는지 똑똑히 보여드리겠습니다. 장관들도 김 대통령과 동참해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도 도덕이 있고 우리는 같은 조선민족입니다.(김용순 위원장을 향해 “오늘 연도에 얼마나 나왔나”고 물었고 김용순 위원장은 “60만명 가량인 것같습니다”라고 하자 김위원장은 “나는 40만명 정도 되는 것 같던데”라고 언급했다.)

김 대통령=나는 처음부터 겁이 없었습니다(웃음). 김 위원장이 공항까지 나온 것에 대해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성심을 갖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거리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나올 줄 몰랐습니다. 김 위원장=그저께 생방송을 통해 초대소까지 행렬을 알려주니까 여자들이 명절 때처럼 고운 옷들을 입고 나왔습니다. 6월13일은 역사에 당당하게 기록될 날입니다.

김 대통령=이제 그런 역사를 만들어 갑시다.

김 위원장=오후부터는 공식 합의된 일정이 진행됩니다. 이 백화원 초대소는 주석님께서 생전에 이름을 지어준 것인데 백가지 꽃이 피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한번씩 산보 삼아 둘러보십시오. 주석님께서 생존했다면 (백화원 초대소까지 오는 승용차 좌석에서) 주석님이 앉아 대통령을 영접했을 것입니다. 서거 전까지 그게 소원이셨습니다. (94년에) 김영삼(김영삼) 대통령과 회담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이 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UN에까지 자료를 부탁해 가져왔다는데 그때 김영삼 대통령과 다정다심한 게 있었다면 직통전화 한 통화면 다 줬을 텐데. 이번에는 좋은 전례를 남겼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관계를 해결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김 대통령=동감입니다. 앞으로는 직접 연락해야죠.

김 위원장=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죠. 김 대통령이 왜 방북했는지, 김 위원장은 왜 승낙했는지에 대한 의문부호입니다. 2박3일 동안 대답해줘야 합니다. 대답을 주는 사업에 김 대통령뿐만 아니라 장관들도 기여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 평양=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200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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