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신문은 9일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방문때 남북 정상간 오간 대화를 한국정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코리아 공존의 시대」라는 시리즈 첫 회에서 보도했다. 다음은 아사히 보도를 토대로 재구성한 대화록.

◆ 주한미군

▲김 대통령=주한미군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지역의 안정과 완충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미군이 없다면 지역의 세력균형은 어떻게 되겠는가.

▲김용순 노동당 서기=미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김 서기의 말을 자르며) 미군이 주둔한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가.

▲김용순 서기=미군은 반드시 철수하지 않으면….

▲김 위원장=용순 비서, 그만 하세요. (김대통령을 향하며) 내가 무얼 하려고 해도 밑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반대한다. 아마 군도 미군에 대해서는 용순 비서와 같이 생각할 것이다. 미군은 우리를 공격해선 안된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설명에는 동감되는 면도 있다. (미군이) 지금 철수할 필요는 없다. 통일이 된 후에도 평화유지를 위해 미군이 남는 것이 좋다.

▲김 대통령=그렇지만 북한은 보도를 통해 늘 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가.

▲김 위원장=내부용이다. 우리의 군도 긴장으로 (규율이) 유지되는 측면이 있는 만큼 그렇게 신경쓰지 않기를 바란다.

◆ 통일방안

▲김 위원장=통일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무엇을 얘기하겠는가. (7·4 남북공동성명을 화제로 올리면서 자주통일 원칙을 강조.)

▲김 대통령=지금은 외세 배척의 시대가 아니다. 내가 여기에 오기로 결정한 것은 나의 「자주」에 의한 것이며 미국·일본에도 얘기했다. 배타적인 자주가 아니다. 주변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협력하면서 독자의 입장을 관철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주가 아니겠는가.

▲김 위원장=(김대통령이 말한) 「열린 자주」에 공감한다.

▲김 대통령=당신 쪽을 흡수통일할 힘이 한국에는 없다. 그럴 생각도 없다.

▲김 위원장=우리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가 외교·국방권을 갖는) 연방제는 어떤가.

▲김 대통령=당장은 불가능하다. (두 개의 독립정부가 협력하는 「남북연합제」의 지론을 전개.)

▲김 위원장=강한 권한을 지닌 중앙정부가 실현되려면 50년은 걸릴 것이다.

◆ 국가보안법

▲김 위원장=(남한의)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

▲김 대통령=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도 (한반도 적화통일 목표를 담은) 노동당 규약을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

▲김 위원장=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당 규약을) 고치겠다. 당 대회를 열어 고치겠다.

◆ 경제협력

▲김 대통령=(북한의 인프라 정비 및 농업 구조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한 뒤) 북한에는 좋은 노동력과 토지가 있다. 남한의 자본·기술과 연결시킨다면 (양쪽에 득이 되는) 윈·윈의 경제협력이 가능하다.

▲김 위원장=식민지 해방후 조선전쟁까지의 한 시기에 북한은 남한에 전기를 제공해 주었다. 지금 남한에 전력의 여력이 있다면 (북한에) 보내주지 않겠는가.

/ 동경=박정훈기자 jh-park@chosun.com(200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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