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들에게 생애 최고의 날은 언제일까.

탈북자들이 한결같이 꼽는 그 날은 노동당에 입당할 때이다. 대학 진학이나 결혼때보다도 더 기쁘다고 한다. 당원이 되면 신분이 바뀐다. 북한사회의 ‘양반’이 되는 것이다.

당원이 되기는 참 어렵다. 인구의 10% 정도인 당원이 되면 누구나 달리 본다. 결혼에는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직장에서 간부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사진설명: 한 여성 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화선입당식'을 갖고 있다.

당원이 되는 가장 쉬운 길은 군에 입대해서 만기제대하는 것이다. 모든 군인이 당원이 되는 것은 아닌데도 북한 남자들은 당증 하나만 바라보고 10년에서 13년에 이르는 군생활을 기꺼이 감수한다. 북한에서는 원치 않으면 군대를 가지 않고 대학이나 직장으로 갈 수 있다.
당증 따기 위해 10-13년 군생활 '감내'

탈북인 조영호(37·평촌 새중앙교회 전도사)씨는 군대에서 어느 날 자신이 입당됐다는 전투속보가 나붙고 군대방송에서 축하메시지를 보내는데 그 감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소대원들이 박수를 쳐주고 무등을 태워서 운동장을 돌며 축하를 해주는데 눈물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오직 당원이 되기 위해서 훈련이든 건설현장에서든 모든 고생을 감내해야 했다.

여자들의 경우 당원이 되면 평균 여성의 권리보다 여러 면에서 격상된다. 이혼소송을 할 때 판사는 구타나 가혹행위에 대해서도 남편 편을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남편이 비당원, 여자가 당원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비당원이 당원을 가해한 상황은 엄중하게 다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가 당원이 되기는 너무 어렵다. 직장일을 마치고도 야간돌격대와 같이 험한 일을 하는 조직에 나가 10년 이상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 남자들도 어려운 노동도 기꺼이 감당한다. 한 탈북자는 입당을 위해서 용광로 건설현장에서 40kg가 넘는 벽돌을 나르는 여자들을 보면 눈물겨웠다고 말한다.

'하늘의 별' 女당원은 '파격대우'
오직 입당을 인생의 목표로 두고 헌신적인 사회활동경력을 쌓지 않으면 어려워 혼기를 놓치는 경우도 흔히 있다. “입당하느라 너무 고생을 해서 여자들 얼굴이 할머니같이 변한다”고도 한다.

운이 좋으면 좀 쉽게 입당할 수도 있다. 출판사 직장장을 했던 김영숙(58)씨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부터 입당을 준비해 비교적 쉽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작과 교시, 수령의 약력 등 책 수백 쪽 분량을 완전 통달해서 통과되었다. 미리 입당을 지도했던 세포비서가 암기를 잘하면 입당이 쉽다고 언질해 주었다고 한다.

“입당할라 하면 세포비서 바뀐다”는 속담도 생겼다. 입당은 세포비서의 추천과 지도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세포비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두었는데 막상 입당을 하려고 하면 바뀐다는 뜻으로 운 없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화선 입당’이라는 제도도 있다. 화선은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선이라는 뜻인데 큰 공을 세웠을 때 '입당'을 선물로 받는다. 신영희(41)씨에 따르면 85년 서울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간 예술공연단원들 중 주연급 5~6명에게 화선입당이 추진됐다.

작년 11월 2차 이산가족상봉 때 나왔던 동진호 갑판장 납북어부 강희근씨도 "두 달전 입당했다"고 어머니 김삼례 할머니에게 자랑했다. 범죄자들을 교화시키는 데 화선입당을 활용하기도 한다. 모범수들에게 입당을 시켜줘 '개과천선'의 표본으로 삼는 것이다.

집안이 좋은 사람은 세포비서의 추천 단계에서부터 우대를 받는다. 출신성분은 입당 결정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요소다. 북송선을 타고 간 재일교포 출신이나 월남자 가족은 입당이 거의 불가능하다. 동요계층이나 적대계층은 입당 대상자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월남자가족과 결혼한 김지운(63·가명)씨는 "이혼하면 입당을 추진하겠다"는 권유를 여러번 받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게서 엄마를 뺏을 수 없다는 생각에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갈등이 생겼던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80년대 이후부턴 '뇌물 입당'까지
그러나 80년대 말쯤에는 "입당이 대수냐,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뇌물로 입당할 수 있는 길도 생겼다. 돈이 중요해진 최근 세태에서는 당원 가치가 많이 하락한 것이다. 당원이 장사를 하다가 출당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조선후기 양반처럼 신세가 전락했다.

"그래도 돈을 벌면 그 돈으로라도 당증을 사고 싶어하는 것이 아직은 일반적인 심리"라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최근에도 북한은 당원들에게 "당성을 단련해 수령결사옹위정신, 총폭탄정신, 자폭정신을 고취해야 한다"고 교양하고 있다. 중국에 나와있는 탈북자 중에도 당원이 많이 포함돼 있고, 당원 중에 아사자도 생겨났다고 하지만 아직도 북한의 수령체제를 떠받치는 중추가 이들이다.

/김미영 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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