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수사과정...변호사 임무는 판결후 "이의 없습니다"

북한에도 검사, 판사, 변호사라는 직업은 있지만, 종사하는 사람 수는 극히 적다. 매스컴에 등장하는 일도 없어 대부분의 북한사람은 평생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어렵다. 변호사는 특히 그렇다. 북한에는 "변호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엄밀하게 말해서 틀린 얘기가 아니다. 민선 변호사는 전혀 없고, 조선변호사협회에 소속된 관선 변호사도 피고인을 위해서 재판정에 나오는 존재가 아니다. 김일성은 집권 초기 권력투쟁과정에서 "변호사가 피고인을 위한다는 것은 부르주아적인 발상"이라고 일갈하기까지 했다.

판사, 검사, 인민참심원, 변호사가 일렬로 앉는 북한의 재판정에서는 판사가 재판을 시작하면서 "이 자리에는 변호사가 나와 있습니다"라는 언질을 할 뿐 변호사에게 피고를 위해 한 마디 거들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판결이 내려진 후 "이의 없습니다" 한 마디 하면 임무는 끝난다.

미국의 배심원과 비슷한 개념의 참심원 제도를 통해 보통사람들이 재판에 등장할 수 있다. 정치범의 경우 재판을 하지 않지만 일반 형사범의 경우 공개재판을 하는데 당성이 좋은 참심원이 나와 검사의 논고를 거든다. 참심원도 피고에게 유리한 얘기를 꺼낼 수는 없다.

오히려 피고에게는 검사가 도움이 된다. 절도, 살인 등의 형사사건이 발생하면 인민보안성(경찰)에서 수사를 맡는데 가장 막강한 힘은 인민보안성 감찰과에서 갖고 있다. "곱사등이 들어가면 허리 펴서 나오고, 벙어리가 들어가면 말 시킨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수사과정이 혹독하다고 한다.

일단 조서가 검찰소에 넘겨지면 검사는 사건의 진위를 확인한다. 검사들은 점잖은 편이다. 이때 피고는 검사에게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항의할 수도 있다. 체포, 구금, 재판 전 과정에서 피고의 인권이 최소한도로 보장되는 것은 검사 앞이다. 검사가 피고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사건은 다시 인민보안성으로 돌아가지만 죄가 깎이는 경우는 드물다.

검사는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범죄자를 재판소에 기소함으로써 당 사법정책을 옹호 관철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관의 일꾼"(정치용어사전ㆍ북한사회과학 출판사)으로 중앙검찰소 소장과 부소장, 각급 검찰소의 소장, 부소장 및 검사를 말한다. 중앙검찰소장(현재 최영림)은 최고인민회의(국회)에서 임명하고 각급 검찰소 검사들은 중앙검찰소장이 임명한다.

판사 역시 "당 사법정책을 직접 옹호하고 집행하는 정치일꾼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실현을 보장하는 중요한 임무를 담당한다"고 돼 있다. 변호사 역시 당을 위해 존재하며, 각 도 단위로 조직되고 전국적으로 조선변호사협회 중앙위원회에 망라된다.

검사나 판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해야 한다. 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에 법학과, 국가관리학과, 국제법학과가 설치돼 있다. 사법시험이 없는 대신 이 대학의 졸업시험이 실질적인 법률가 자격시험이 된다. 법학부의 인기는 경제학부의 인기에 뒤진다. 당이 실질적인 사법기관의 역할을 맡고 있으므로 정치가 법을 지배하는 형국이다. 졸업 후 곧바로 검사나 판사에 임용되지 않고 서기 등의 하위직을 몇 년 거친 후에 임명된다.

변호사의 경우 1993년 변호사법이 채택되면서 자격시험도 생겨났다. 외국과의 교섭이 잦아지는 요즘 변호사가 법률전문가로서의 일정한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미영 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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