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외국문출판사는 북한체제를 외국에 선전하는 출판물을 제작하는 곳이다. 노동당에 직속돼 있고, 종사자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대우도 조종사에 버금갈 정도라고 한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자료를 비교적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그래서 외국문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포장할 때 끈 묶는 사람까지 중앙당 ‘끈’이 없으면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외국문출판사는 1949년에 생겼고, 1980년 초 편집부와 인쇄소를 함께 중구역에서 보통강구역으로 옮겨 대단위 시설을 갖춘 출판사로 탈바꿈했다.

이곳의 첫째 업무는 김일성 김정일저작집을 비롯한 '불멸의 력사' '고난의 행군' '세기와 더불어' 등 각종 노작을 번역해 외국으로 유포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오늘의 조선', 화보 '조선' 등의 각종 해외 홍보 잡지를 제작해 외국에 내보내는 일이다. 외국의 책이나 정보를 스크랩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올리는 '1호 편집부'도 여기서 운영한다.

이곳에서 펴내는 출판물은 8개국으로 번역되도록 정해져 있다. 영어, 불어, 중국어, 러시아어, 독일어, 일본어, 스페인어, 아랍어이다.

60년대 북한의 혁명을 돕기 위해 건너간 베네수엘라 공산당원 알리 라메다와 프랑스인 자크 세디오가 이곳에서 일한 적이 있다. '사실을 왜곡한 우상화'에 반감을 품었던 이들은 투옥되었는데 이때의 체험을 고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내가 겪은 일'이라는 제목의 책을 1979년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에서 펴냈다.

이들 사건 이후 외국인은 더이상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곳에서 16년간 일했던 김영숙(46ㆍ 2000년 입국)씨도 “외국인 근무자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지인의 도움없이 번역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베테랑급 번역 기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한때 유능한 영어 편집부장이 철직(해직)되어 출판사 전체가 근 3년을 애를 먹기도 했다고 한다.

출판물의 관리는 극도로 엄격하다. 검열을 거치지 않은 원고는 물론, 마크 하나도 함부로 인쇄될 수 없다. 출판사의 당위원회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종합편집부에서 원고를 결정하면, 인쇄소로 넘어간다. 편집부에서 인쇄소로 연결되는 통로는 인쇄소에 설치된 '원고접수처'다. 원고를 접수할 때는 검인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살피는 것이 필수다. 책을 만들기 시작하면 윗선에서는 "떠나는 비행기를 잡아두었다"며 빨리 만들어내라고 채근하기 일쑤다. 그러나 여기서 찍혀 나온 책들은 거의 비행기를 못 탈 운명에 처해진다. 외국문출판사에 근무하는 사람은 '출판물 대보급소'에 가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비행기 세워놓고 만든 책이 좀먹어 가는 모습을 보면 일할 맛을 잃기 때문이다. 전량 비매품으로 나가는 이 책들은 수요와 공급에 상관없이 한꺼번에 수만 부가 찍혀 나오므로 제때 소화해 낼 수가 없다.

우선 외국에 상주하는 외교 공관이나 대표부에 보내지만, 그밖에 북한에서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은 의무적으로 대보급소에 들러 할당된 책을 받아가야 한다. 외국에서 누구에게든 책을 나눠 주어야 한다. 북한 외무상 백남순은 외국문출판사 사장을 지냈다.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의 부인 박승옥씨도 이곳에서 오래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미영 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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