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북한의 각 직장에서는 망년회 준비로 바쁘다. 남한에서 처럼 식당이나 술집에서 치를 수 없기 때문에 각 직장별로 준비를 해야 한다.

대개 10~15일 전부터 준비를 한다. 각자 쌀을 걷기도 하고, 직장에서 관리하는 부업밭에서 생산한 옥수수를 술과 고기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1990년 이전에는 직장마다 돼지도 잡고 술도 장만해 분위기를 돋우었으나 최근에는 경제난으로 많이 썰렁해졌다. 당국에서도 망년회를 아예 하지 말거나 조촐히 치르라는 지시를 내려 보내곤 한다.

망년회는 대개 비교적 넓은 집을 가진 개인 집에서 갖는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외부에는 가능한 알려지지 않게 한다. 기관장의 ‘능력’이 좋은 곳은 돼지고기와 술을 넉넉히 먹을 수 있지만 고지식한 기관장이 있는 직장은 당의 지시대로 아예 망년회를 하지 않는 곳도 있다.

기관장을 잘못 만나 술 한잔도 제대로 먹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직장에서 흥겨운 망년회를 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불평 불만이 고조된다. 과거에는 국가에서 주는 공급량이 똑 같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기관장이 알아서 직원들을 먹여 살리는 형편이 되다 보니 망년회도 수준 차이가 심한 것이다.

망년회는 1년중 직장 동료들이 다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다. 한잔의 술로 동료간의 오해나 앙금을 씻어낸다. 밤늦게까지 술판을 벌이면서 젓가락으로 밥상을 두드리고, “옹헤야” 가락에 맞춰 어깨춤을 추면서 한해 동안 쌓인 모든 것을 풀어버린다.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술먹고 노는’ 망년회가 아닌 ‘일년간 사업을 총화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회의’를 한 것으로 된다. 혹시라도 검열에 걸리면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끼리도 조촐하게 술과 고기를 준비해 망년회를 한다. 연말에 가장 쓸쓸한 곳은 인민군이다. 인민군에는 망년회가 완전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회에 살짝 나와 친구들과 어울려 망년회를 하는 ‘요령 좋은’ 군인들도 없지 않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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