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열정과 고민 김정일이 영화에 쏟는 정열은 정말 대단했다.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영화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북한에 있을 때 나는 김정일에게 이와 같은 북한 영화의 문제점을 솔직하게 예를 들어가며 지적했다. 김정일은 나의 비판을 듣고 ‘신선생이 지금 지적한 점이 바로 내가 바라던 것’이라며 금방 수긍했다. 김정일은 북한 영화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1983년 10월 19일 내가 비밀리에 녹음해 두었던 대화속에 북한 영화 현실에 대한 그의 고민이 생생하게 들어있다.
◇사진설명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북한 스테프들
"소련 유학 갔다 온 동무들이 광폭영화촬영법도 모르고 있습니다. 혁명한 지 60년 되는 소련은 미국하고도 합작하고 서독이나 영국하고도 합작해 기술을 도입하는데 우리는 남북이 대결하고 있어 자본주의 국가에는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울타리 안에서 자기 것만 보고 남의 것과 대비할 줄도 모르는 바보들입니다."

그때 그는 이미 남한 영화가 북한에 비해 우수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남조선 젊은 사람들은 한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 써서 연기를 발전시킨다 이겁니다. 그런데 우리 신인들은 한 두 작품 얼굴 팔아먹으면 그저 그걸로 끝입니다. 남조선 배우나 감독들은 지독한 노력 없이는 밥통이 떨어지고 돈 떨어지면 굶어 죽으니까 죽자살자 뜁니다."

그는 체제의 비효율성이 영화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동독, 체코, 소련이 아닌 프랑스, 서독, 영국 등으로 영화유학을 보낼 수 없는 현실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특히 일본하고 많이 해야겠는데 일본영화는 보지도 못하고 그저 ‘키네마 준뽀’나 하나 얻어보는 게 전부입니다. 이러니 이거 참 창피합니다."

김정일의 진단은 매우 정확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김정일은 영화인들에게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련 유학을 통해 “스타니슬라브스키다 뭐다 해서 잔뜩 외워가지고 왔는데 실천이 덜 되었다”고 하면서 이론과 실천의 괴리에 대해 적절하게 지적해 내기도 했다. 북한 영화의 유일한 자산이 소련을 통해서 얻어온 것이지만 별로 실효성이 없고, 새로 만든 영화대학이 제 구실을 못해내 몹시 고민스럽다고도 했다.

“앞으로 정치와 아무런 관계없이 순전히 예술이라는 걸 정면에 내걸고 문화정책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은 북한에서 오직 김정일만이 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시나리오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 그는 과감하게 말했다. “1년에 한 작품 나와도 생활비는 주니까 의욕이 없습니다. 또 원고료가 주업이 돼야 하는데 그게 부업이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써야 될 거는 부업이 되고 일 안해도 생활비는 국가에서 먹여 살리고 돈은 돈대로 주니까 의욕이 나올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 부부의 납치가 그의 북한 영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오랜 고민에서 나왔음을 이렇게 고백했다.

"여기 문화예술부라는 것은 행정적으로 그저 도장만 콱 누르면 통과됩니다. 적자가 나도 국가가 보상해 줍니다. 전부 다 국가 예산이니깐 배우 하나 놓고 카메라 필름을 한 백미터 냅다 휘두른다 말입니다. 지금 실태가 이렇습니다. 그래서 하두 이러니까 다른 제도하에서 사는 사람을 한번 데려다가 실지 예술을 해보자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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