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수준 줄다리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한 문제와 관련한 대북 협상이 비밀리에 진행중이며, 이 협상을 주도하는 곳은 국정원 2차장(국내 담당)이 이끄는 특별팀(태스크포스)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 낸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과 박 전 장관의 대북 접촉선은 지난 1월 초 북한 당국으로부터 김정일 위원장이 방한한다는 확답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 방한 시기가 확정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정상회담의 의제들에 대한 남북 협상 실무자들의 의견이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우리 정부가 북한이 김 위원장의 방한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선물’에 대해 아직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정치적 선물에는 ‘통일 등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6ㆍ15 공동선언의 1항을 제도화하는 것과, 현재의 정전협정을 북미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한 남한 정부의 동의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북한으로선 남한에서 오랫동안 친북 논리로 금기시되다가 평양 정상회담에서 반(반) 합법화시킨 이들 문제를 서울 정상회담에서 완전 합법화시키겠다는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또 전력 제공을 포함한 경제적 지원을 안정적으로 해줄 것을 남한 정부가 약속해 주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로서는 북한의 이같은 요구들을 수용하기 어려운 처지다. 한 소식통은 “북한이 그같은 요구들을 제기하는 목적은 주한 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자연스럽게 관철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 우리 정부가 이를 수용할 경우 김정일 방한 후에 남한 사회는 극심한 분열상을 노정할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평양 정상회담 직후의 분열상이 ‘보수 대 진보’였다면 서울 정상회담 직후엔 ‘친북 대 반북’이 될 것이라는 우려이다. 전력등 경제지원

문제도 국내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만만치 않은 난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같은 문제들과 함께, 정부 일각에서는 내년 대선등 국내 정치 일정을 감안해 김정일 방한 시기를 언제로 잡는 것이 유리할 것인지의 고려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점에서는 김정일 방한이 올해 하반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김정일 방한은 현재 예상되고 있는 3월말~ 4월초보다 미루어져 남북 정상회담 1주년이 되고 북한 당국이 통일 축제 기간으로 정한 6월15일부터 8월15일 사이에 이루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한 소식통은 전망했다. /이교관 기자 haed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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