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행정부 출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상하이 방문,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 2월 방한 등으로 한반도 주변 정세가 바뀌고 있다.
◇사진설명: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홍순영, 양성철, 이재춘, 최상룡
재외공관장 회의 참석차 귀국한 홍순영 주중대사, 양성철 주미대사, 최상룡 주일대사, 이재춘 주러시아대사 등 4강 대사가 1일 좌담회를 갖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변화에 관해 분석하고 전망했다. 좌담회는 조선일보 편집국 회의실에서 김창기 정치부장의 사회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4강과 공조...북한에 "국제협력 중요성" 설득해야

― 먼저 4강들이 각기 올해 어떤 외교 전략을 갖고 있는지, 대외정책에서 어떤 부분에 역점을 둘 것인지 말해 달라.

홍순영 =세계 모든 나라들이 ‘평화와 안정 유지’ ‘지속적 경제성장’이라는 공통된 두 목표를 갖고 있다. 중국은 특히 경제발전이 최대 목표다. 이를 위해 평화와 안정유지,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과는 ‘경쟁적 동반자 관계’를 계속 모색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평화·안정을 유지하면서, 올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세계 경제의 일부가 되어 갈 것이다.

양성철 =부시 행정부도 대외정책 기조는 적극 개입(engage)하는 기본 노선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말했듯이, 세계 어디의 불이든지 끄러 다니는 소방수 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선별적 개입(selective engagement)’을 추구할 것이다. 라이스는 외교정책의 전통적 가치 불변성(constancy)과 정책의 일관성(consistency)을 강조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전통적 가치를 일관성있게 유지한다는 것이다.

최상룡 =일본의 외교 패턴은 상황의 압력이 있을 때 움직이는 ‘상황의존형’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출범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시하며 대응 방향을 마련해 갈 것이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나라로, 미국 공화당쪽과의 인맥이 두터워 부시 행정부와의 이념적 친밀감은 대단하다. 또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을 중시했지만, 부시 정권은 상대적으로 일본을 중시할 것으로 보고, ‘관·민 합동 미·일 협의체’를 추진하고 있다.

이재춘 =푸틴 대통령은 ‘위대한 러시아’의 재건을 외치고 있으나, 과거 소련 같은 군사주의가 아니라 경제발전을 통해 하려 한다. 이를 위해 국내정치 안정과 세계적·전략적 안정을 추구한다.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한반도의 지각 변동은 러시아에 중요 변수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개발이 중요 목표이므로, 남북 종단철도를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연결해 유라시아를 잇는 자신의 입지를 살리기를 바라고 있다.

― 각국은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클린턴 행정부와 어떻게 차이가 날 것으로 보며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홍 =중국은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서 세계 평화를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중국의 이해·동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중·미 관계는 미국의 정권이 바뀌어도 변화하지 않는다고 본다.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나 전역(전역)미사일방어체계(TMD), 대만 문제, 인권 문제 등에서 견해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전략적 동반자 관계’든 ‘경쟁적 동반자 관계’든, 미국과의 동반자 관계엔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중국은 생각한다.

이 =과거 러·미 관계는 미국에 공화당이 집권했을 때 협력했던 적이 많다. 1972년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 조약을 만들 때나, 1989년 독일 통일 때 그랬다. 물론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장 문제, 이란·이라크 문제 등에서 러시아는 미국과 다른 입장이지만, 푸틴은 대단한 실용주의자로 그런 문제도 미국과 협의할 수 있다고 본다.

최 =일본의 리더들은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정치력으로 전환하는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일본에 대해 방위비 분담(burden-sharing)을 강조했지만, 지금 일본은 부시 행정부가 권력 분점(power-sharing)도 수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 맥락에서 일본은 한반도 통일에도 걸맞은 역할을 하고자 한다.

양 =부시 행정부에는 러시아·중국·일본·한국을 잘 아는 정책결정자들이 클린턴 때보다 많다. 특히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대단히 중시하므로 미·일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부시는 또 라이스 안보보좌관과 린지 경제보좌관 밑에 정책조정관을 신설하기로 했는데, 이는 대외 정책에서 안보와 경제를 분리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통상정책은, 클린턴 행정부가 미국내 수입규제 정책을 통해 ‘공정 무역(fair trade)’을 강조했다면, 부시 행정부는 통상 확대와 그것을 위한 ‘자유 무역(free trade)’을 강조할 것이다.

― 올해 4강들의 동북아 정책과 한반도 정책 방향은 어떤 것인가. 특히 북한의 변화 움직임에 대해 4강들은 어떻게 보고 있나?

홍 =중국은 북한이 서방과의 외교관계를 넓혀나감에 따라 더욱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고 본다. 중·북 관계는 더 공고해질 것이다. 중국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지지하며, 북한이 중국 모델을 따라주기를 대단히 바란다. 주룽지 총리가 김정일 위원장의 상하이 방문을 직접 안내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북한에 무엇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 =러시아는 남·북한에 균형 잡힌 정책을 펴면서, 한반도에서 그들이 ‘정당하게’ 갖는 이익을 반영시키려 한다. 푸틴 대통령이 2월 말 방한하며, 그 후 김정일 위원장이 러시아에 가게 돼 있다. 러시아는 북한의 개혁·개방이 대단히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북한이 개혁·개방하더라도 중국처럼 1당 독재는 유지하길 바라겠지만, 러시아는 그런 유보도 없다. 시베리아 개발은 한국밖에 투자할 나라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남·북한 해빙을 바란다.

양 =미국은 한국의 주도적·중심적 역할을 강조해왔고, 한반도 정책도 한국과 사전에 협의하며 결코 앞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변화 자체는 미국에서도 이의가 없으나, 그 내용과 행태, 속도 등에서 논쟁이 있다. 일시적·형식적 변화냐, 아니면 전략적·본질적 변화냐 하는 것이다.

북한이 안보·군사면에서 별로 변화가 없고 위협이 상존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남북 교류를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쉬운 것부터 시작해 어려운 것으로 가자면 당장은 상호주의가 미흡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쨌든 미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즉 핵과 미사일 개발 저지에 관심이 크다. 그러나 우리가 우려할 것은 없다. 미국은 이 문제도 풀어나갈 것이다. 한국전쟁을 종식시킨 것은 공화당 정권이었다.

최 =일본에서도 대체로 북한이 김정일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목표엔 근본적 변화가 없다고 보고, 다만 그것을 위해 전술적 차원의 변화는 상당히 있을 것으로 파악한다. 일·북 수교 협상은 ‘일본인 납치’ 문제가 걸려 있다. 지금 일본은 부시 행정부가 어떻게 할지를 기다리고 있다. 일·북 교섭은 계속해나갈 것이다.

양 =북·미 수교도 당장은 어렵다. 미국은 새 행정부가 한반도 정책 진용을 짜기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걸릴 것이고, 북한의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뿐 아니라 재래식 군사력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테러 지원국 해제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수교에 앞서 미국의 반 테러법, 적성국 교역법 등도 개정에 시간이 걸린다. 작년 말 미국과 북한은 클린턴 방북을 위해 콸라룸푸르에서 회담을 가졌으나, 북한이 예상되는 성과에 대해 확실한 언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클린턴 방북이 이뤄지지 못했다.

홍 =북한은 수십년만의 호기를 놓쳤다. 김정일 위원장이 큰 결단을 내려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선뜻 포기함으로써 클린턴 방북을 실현시켰어야 했다. 북한에 남은 마당은 대남 관계다. 교류·협력의 제도화 등 할 것이 많고, 북이 어떻게 하는지를 미국도 주시할 것이다. 북한은 남북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잘 생각하고 나와야 한다.

―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정부가 국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나가야 할 외교 정책 방향은 무엇이겠는가?

양 =남북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유일한 맹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조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일·중·러 관계도 돈독히 해야 한다. 그래서 남·북이 합의하고 미·중이 보장하는 형태의 '2+2' 과정에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

이 ='2+2'든, '2+4'든, 결국 앞의 '2', 즉 남·북이 잘 해야 한다. 북한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잘 설득해야 한다. 주변 4국과의 진정한 우호 협력을 위해서는 우리도 미들 파워(강대국은 아니지만 약소국보다는 큰 나라)로서 투명하고 솔직한 자세로 그들을 다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 하나라도 소외감을 갖게 해선 안된다.

홍 =북한은 개혁·개방으로 선회했다. 대결 외교보다 평화공존 외교가 더 어렵다. 정책 입안만큼, 일관성 있는 추진이 중요하다. 포용정책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 대해 △‘2+2’ 평화체제 구축에 호응하고 △남북 경제협력의 틀을 자꾸 만들어나가도록, 직접, 그리고 4강을 통해, 설득해야 한다. 장기적 인내심을 갖고 나가야 한다.

최 =평화 유지를 위해서는 일관성이 필요하다. 포용정책은 더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 우리와 4국간의 경제관계도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 상황과, 무엇을 유의할 것인지 말해 달라.

양 =작년에 한·미 교역은 우리가 362억 달러 수출, 280억 달러 수입으로, 82억 달러 흑자를 냈다. 통상 쟁점은 지적 재산권 문제, 미국의 철강 수입 규제, 투자보장협정 체결 문제 등이다. 특히 투자보장 문제는 미국이 우리의 국산 영화 의무상영일수(스크린 쿼터) 철폐를 요구하고 있어 타결이 안되고 있다.

이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은 잠재력이 많다. 러시아는 과학기술의 선진국이고 엄청난 자원이 있다. 하지만 양국 경제관계는 미미하다. 러시아 시장과 국력을 너무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푸틴의 2월말 방한도 경제에 상당히 역점을 둘 것이다. 러시아의 미래에 투자한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홍 =우리와 중국은 서로 상대국에 대한 3대 교역국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국 일본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지금까지는 우리 기업의 중국 투자에서 실패한 경우도 많았지만, 앞으론 달라질 것이다. 중국도 올해 WTO에 가입하고, 제도와 행태와 사고에서 세계수준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다가갈 것임을 주목해야 한다. 대단히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2010년이면 한·중 교역이 한·미 교역과 맞먹을 것이란 견해가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한·중 동반자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최 =한·일 통상관계에서 가장 문제는 무역 역조다. 작년에 우리는 110억달러 적자였다. 기계·부품·소재의 대일 의존도가 너무 높다. 우리 수출과 일본의 한국투자를 늘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정리=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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