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 한발만 명중, 죄송합니다"

작년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이튿날인 6월16일 청진시에서 언론자유와 연애자유 등을 요구하는 표어가 나붙었다. 이 사실을 전한 한 북한 전문가는 『여기서 언론자유란 생활총화 시간에 말을 좀 자유롭게 하게 해 달라는 것이고, 연애자유란 젊은 남녀가 깜깜한 극장이 아닌 바깥에서 데이트 하는 것을 생활총화 시간에 비판하지 말아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북한 주민들의 일상적인 자유의 폭을 결정하는 것은 생활총화이다. 여기서는 자기 잘못을 털어 놓는 ‘자기 비판’ 뿐 아니라 동료나 이웃의 잘못을 지적하는 ‘호상 비판’도 해야 한다. 그래서 ‘동지비판회’라고도 한다.
◆사진설명 : 평북 향산군 태평협동농장의 생활총화 시간에 한 여성이 동료들 앞에서 하루 농사일에 대한 자기 비판을 하고 있다.
자기 비판은 ‘실탄 사격 때 세발 중 한발밖에 명중하지 못한 결함을 범했다’(군인), ‘작가의 의도를 무시한 채 관객을 웃기려고만 했다’(연출가)는 등의 내용이다. 호상 비판에서는 ‘000 동무는 나라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감안해 물자를 아낄 생각은 않고 있다’거나 ‘000 동무는 출근 지각이 이제 병적이다”는 등의 지적이 가해진다.

비판의 기준은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과 김일성-김정일 교시이다. 이중에서 자신과 남의 잘못을 비판하고 고치는 데 가장 적절한 부분을 골라 잘못의 원인을 분석하고 시정 방법을 마련한다. 북한 사람들이 비교적 말을 잘 하는 것도 어릴 때부터 이같은 비판 훈련을 받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생활총화는 당, 청년동맹, 직업동맹, 농업근로자동맹, 여성동맹, 소년단 등 모든 기관과 단체마다 주기적으로 실시된다. 직장인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주 생활총화,’ 농민들은 10일에 한 번 열리는 ‘10일 생활총화,’ 학생들은 인민학교 때부터 ‘주 생활총화’에 참여한다. 문화예술계와 과학계 종사자들과 대학생들은 다른 분야 종사자들과 달리 이틀에 한 번 열리는 ‘2일 생활총화’에 참석해야 한다.

주민들은 월말 결산과 연말 결산 생활총화에도 참여해야 한다. 직장인, 농민, 학생 할 것 없이 모두 공통적으로 한 달에 한 번 평소보다 규모가 큰 생활총화에 참여해야 하고 연말이면 그 해를 정리하는 ‘연 생활총화’가 12월에 열린다. ‘연 생활총화’의 경우 단위가 큰 곳은 아예 하루를 비우거나 오후 시간을 비워서 할 만큼 오래 걸린다.

학교 같은 곳은 전 학년 학생들을 전부 모아서 크게 치른다. 특히 부화(스캔들) 사건이나 여러 가지 큰 물의를 일으킨 학생들을 앞으로 불러내 토론시키고 앉아 있는 학생들로 하여금 이들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게 한다. 이 때 너무 호되게 비판 받은 나머지 눈물을 흘리는 학생까지 있다.

생활총화에서 주민들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것은 호상 비판이다. 자기 잘못은 크게 걸리지 않을 만큼 적당히 하면 되지만 남의 잘못을 비판한다는 것은 감정을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대개 만만하고 순한 친구들이 호상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한 번에 여러 명이 한 명에게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자주 비판하면 선생님의 제지를 받게 된다. 호상 비판 때문에 생활총화에서 학생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생활총화가 눈에 띄게 이완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인들에 따르면 경제난과 식량난이 심화하면서 주민들에 대한 당의 통제가 약화되자 생활총화에 참석하지 않는 주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비당원들의 생활총화가 흐트러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탈북인은 “당원들은 무조건 생활총화에 참석하지만 이리저리 식량을 구하러 떠돌아 다니는 주민들이 많아 비당원들 간의 생활총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당원의 경우 생활총화에서 지적받는 일이 출세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지만 비당원의 경우는 크게 불이익을 받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생활총화의 변화가 곧 주민들에 대한 사상통제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주민들이 생활총화에 빠지거나 경시하는 듯한 경향을 북한당국이 묵인하는 것은 식량난으로 인해 식량을 구하러 다녀야 하는 이들의 사정을 고려한 때문이지 결코 주민들에 대한 사상통제를 포기하거나 완화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이교관 기자 haed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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