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한평생 고르고 닦은 음악을 제자가 이어받아 풀어낸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황병기·이화여대 교수)씨가 50년 가야금인생을 집대성해 완성한 ‘정남희(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산조’를 지애리(지애리·35·사진)씨가 14일 오후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연주한다.

다스름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 총 8악장 구성에, 어르고 풀기를 70분. 가야금산조 사상 규모가 가장 큰 작품이다. 장식음 잔가락 농현(장식법의 하나인 왼손기법)을 절제하고, 가락을 논리적으로 풀며, 죄고 푸는 리듬의 역동감, 정적 동적 가락의 대비 등 구성미가 뛰어나다. 아기자기한 재미보다 고고한 음악적 희열을 넘보는 곡으로, 황 교수는 “살보다는 뼈 가지고 논다”고 표현한다.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산조’는 황 교수가 정남희(1905∼1984) 산조가락을 수십년 다듬고, 자신의 가락을 보태서 짠 것. 정남희는 1920∼1940년 가야금 명인으로 활약하다 6·25전쟁때 월북, 북한에서 평양음대 교수를 지냈다. 황 교수는 정남희의 제자 김윤덕에게서 정남희류를 익혔으며, 1930년대 정남희 연주를 담은 레코드와 북한에서 구한 녹음 테이프를 바탕으로 정남희제를 복원하고, 자신의 가락을 덧댔다.

황 교수는 가야금 인생을 온축한 분신과도 같은 작품의 첫 연주를 제자에게 맡겼다. 지씨는 이미 97년 이곡을 초연했다. 그러나 이번 연주는 중모리가 열여섯장단 늘었다. 꼼꼼한 황 교수가 다시 손질한 것.

산조는 연주자의 음악이다. 같은 연주자일지라도 지난해 연주 다르고 올해 연주 다르다.

“공부한 지 3년 만에 초연 무대에 도전했는데, 이번에는 스스로도 가야금을 탈때 표현이 전혀 달라졌음을 느껴요. ”

지씨는 “수십년 해도 산조는 힘들고 어려운데, 이제는 편안하다”고 말한다. 분신과도 같은 자신의 산조를 제자가 김청만 장구반주로 타는 연습장을 찾은 황 교수는 “무르익었다” “물이 올랐다”며 흡족한 표정. 지씨는 이화여대 박사과정에 다니며 이화여대 강사, 추계예술대 겸임교수로 무대와 강단을 누비는 재원. 96년 워싱턴 케네디센터서 공연했고, 독일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이스라엘을 돌며 가야금을 연주했다. (02)548-4480

/김용운기자 proart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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