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 회유..안되면 강제동원
목숨건 망명·자살 등 수난의 역사
'영화광' 김정일 정권 유지에 이용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독재자 중에 영화를 좋아한 사람이 많다. 레닌, 스탈린,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랬고, 페론과 차우셰스쿠, 북한의 김정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영화를 정치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정책을 폈다.
사진설명 : ◇평양의 대동문영화관

폭군 네로는 한편의 시를 짓기 위해 로마 시가지를 불태웠고,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는 젊은 시절 미술을 공부한 사람이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영화에 미쳐 '치네 치타 촬영소'를 만들었다. 유명한 영화 「벤허」도 이 촬영소를 빌려서 만든 작품이다. 예술을 좋아한 독재자들의 심리는 학문적으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다.

독재자들은 영화를 정권 유지에 활용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강제로 동원하거나, 최고의 조건을 내걸고 회유했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순순히 그들의 요구에 응한 것은 아니다. 목숨을 걸고 망명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파멸의 길을 걷기도 한다.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자유를 택했다.

소련이 낳은 세계 영화사상 최고의 영화작가인 에이젠슈타인은 영화에서 손을 뗀 채, 자기 비판을 하고 죽었다. 독일의 명감독 프리츠 랑은 "당신이 유태인이라도 관계없다. 독일 제3제국 영화의 전권을 주겠다"는 나치의 실력자 괴벨스의 유혹을 교묘하게 수락하는 척하면서 그날로 베를린으로 가서 파리행 기차에 뛰어올라 미국으로 망명했고, 루이 브뉘엘은 친구인 달리로부터 공산주의자라고 밀고를 당해 뉴욕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조셉 로지는 올드리치에게 뒷일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빨갱이 사냥이 한창인 헐리우드를 떠나 런던으로 망명했다. 그 밖에도 많은 위대한 영화인들이 파시즘, 공산주의, 매카시즘 등의 수난을 받으며 스러져갔다.

프리츠 랑 감독은 「메트로폴리스」 「니벨룽겐」 「독토르 마부세」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거장이다. 2026년의 대도시 메트로폴리스를 무대로 한 줌의 지배자들과 그들에게 억압당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그린 공상과학영화 「메트로폴리스」(1926년 작)는 그의 대표작이며, 무성영화시대 후기를 장식하는 기념비적인 걸작이다. 이처럼 빼어난 작품을 만든 감독이었으나, 미국으로 망명한 후에는 「무뢰의 계곡」 「서부의 혼」 같은 그저 그런 서부영화를 몇 편 만들고 불우하게 세상을 떠났다. 만일 그가 괴벨스의 유혹을 받아들여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면, 역사에 남을 괄목할 만한 민족 대서사시적인 대작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유를 택했다. 그리고 유태인으로서의 양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불리한 환경을 선택했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자유는 목숨처럼 소중한 것이다.

독재자 김정일 역시 영화, 연극을 좋아했고, 그 분야에서 상당한 능력을 발휘했다. 예술을 정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는 영화, 연극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한 김정일이 당연히 후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김일성이 단순히 자기 아들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후계자로 삼은 것은 아니다. 그의 예술활동을 통해서 나타난 능력으로 미루어 보아 김정일이 지도자가 될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김정일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노동당 선전 선동부장을 역임했다는 우연 말고도 본인 자신이 선천적으로 영화에 애착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정치 이전에 그는 이미 스스로 '영화광'이 되어버린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영화에 미친 김정일의 고민과 딜레마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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