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복무 10년, 주변 민가가 `내 집'

새벽 6시(여름엔 5시) 기상나팔이 불면 북한 군인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분대별로 줄지어 볼 일을 보고 나면 아침운동이다. 날씨를 불문하고 알몸(팬티 차림) 체조다.
사진설명 : ◇북한 인민군에 새로 입대한 신병들이 훈련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세면이 끝나면 담요, 침대 등이 얼마나 잘 정돈돼 있는지 용의는 얼마나 단정한 지검사를 거친다. 엄격한 사관장(대체로 특무상사)이라면 각자의 매트리스 끝으로 탁구공을 굴려 일직선으로 잘 굴러가는지 살필 정도로 철저하다. 한 사람이라도 걸리면 벌은 단체로 받게 되기 때문에 '두부모 같이 각나게' 정리정돈한다. 다음은 대열 훈련. 목청높여 군가를 부르며 군기를 잡는다.
7시30분. 기다리던 아침식사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양호한 편이었다. 1일 주식 800g, 부식 1kg, 육류 80g, 기름 20g 등 3200~3500cal 정도의 영양공급이 가능했지만, 요즘은 반찬이라고 해야 양념 없이 소금에 절인 무와 배추 정도로 만족해야 할 때가 많다. 명절에는 고기 맛을 볼 수 있다. 군인에게 가장 큰 명절은 4·25조선인민군절로 고기도 제일 많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일과는 상학(교육) 시간이다. 이론적으로 배우는 실내상학과 바깥에서 배우는 실외상학이 있다. 훈련은 고되지만 높이뛰기든 총검술이든 모든 병사가 같은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하는 '곱배기 훈련'이 게 중 가장 어렵다. 훈련 때 최고의 낙은 백승이라는 북한산 독초 한 대 빼어 물 때다. 담배는 하루 10개비씩 배급받는데 요즘은 그것도 어렵다고 한다.

토요일 오후부터는 세탁과 이발 등 ‘위생문화생활’을 하고, 일요일에는 분대별 축구시합에 열을 올린다. TV를 보기도 한다. 17세부터 27세까지 10년 복무를 해야 하는 북한군인에게는 휴가도 면회도 없다. 연 15일로 규정돼 있던 정기휴가도 80년대 초반 "통일 때까지 휴가를 가지 말자"는 구호 아래 사라졌다. 포상휴가나 부모 사망 시 특별휴가가 있을 뿐이다.


◇두만강변의 한 군부대 부업밭에서 군인들이 밭을 갈고 있다. 각 중대별로 밭을 만들어 채소 등을 기른다.

그래서 군인들은 부대 주변의 민가를 적어도 한 집은 꼭 사귀어 둔다. 집에 편지를 보내거나 필요한 물건을 조달하는 부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계기로 연애를 하는 군인도 가끔 있지만 엄하게 금지돼 있기 때문에 병실(내무반)에서조차 쉬쉬한다. 가끔 예술단이나 선전대에서 위문공연을 온다. 군인들은 노래하는 아가씨들 가까이로 한발짝이라도 더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남자끼리지만 춤도 추는데 사회에서 배운 춤은 자유춤이라 해서 군대에서는 인기가 없고 군대춤이 격에 맞다.

제대가 가까워진 상사들은 '보따리상사'라고 불린다. 보따리를 쌀 때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집으로 가지고 갈 선물이나 식량을 조금씩 챙기기 시작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도망치고 싶은 시절'은 신병훈련 때. 정식 계급장을 달기 전인 전사 시절이다. 총격전, 격술, 평행봉, 철봉 등 익혀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전사 때는 문제가 있어 제대하게 되어도 ‘감정제대’라고 해서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계급장을 달고 난 뒤에 잘못을 저질러 제대가 되면 ‘생활제대’라고 해서 평생의 오점으로 따라다닌다. 최선을 다해 군대생활을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다.

군인이 되면 당원이 되기 쉽고, 제대한 후 대학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군인의 입당률도 90%에서 30% 이하로 뚝 떨어졌다. 식량난으로 군인들의 사기는 물론 위신도 땅에 떨어져 버렸다.

식량난 전에는 군인들이 협동농장 등지에서 먹을 것을 걷어가는 것을 '통일군대가 먹는 걸 뭐라고 할 것인가'라고 해서 가볍게 넘어갔지만 요즘 들어서는 약탈의 양상을 띠고 있어 민심이 흉흉해지곤 한다. 군인들은 식량을 자체적으로 구하는 일을 '마대부업'이라고 한다. 사관장(특무상사)이 나눠주는 마대를 들고 밤이 이슥해지면 감자든 시금치든 돼지든 닥치는 대로 걷어와서 가난한 군대살림을 벌충하게 된다. 그래도 영양실조에 걸리는 군인이 늘어나는 현실이다. /김미영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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