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3일 개막된 '제7회 평양 국제영화제'에서 일본영화 6편이 특별 초대 작품으로 상연되었고, 영화제가 끝난 후 평양시내 일반극장에서도 상연되었다고 한다. 초대된 작품은 야마다 요지감독의 ‘남자는 괴로워’ 등이다.
사진설명 : ◇조선예술영화촬영소내 영화 포스터.

‘남자는 괴로워’는 무려 48편까지 연작이 만들어져 기네스북에 오른 화제작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서민생활을 모르고 보면 별로 재미가 없고, 그다지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도 아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일본 영화 중에서 왜 이 작품이 초대되었을까? 아마도 해답은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이 영화의 주인공인 도라지로의 “열렬한 팬"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북한 영화에 있어서 이른바 김일성 교시와 김정일이 쓴 ‘영화예술론’은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다. 특히 김일성의 교시는 고칠 수도 없고 거역해서도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진리로 취급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총체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두통거리인 경우가 많다. 영화에 대해 전문적 식견이 없는 그가 걸핏하면 영화에 대한 교시를 내놓는데, 아무리 엉뚱해도 그 말이 곧 법이 되어버리니 문제다.

"음악과 노래가 없는 영화는 영화가 아닙니다. 노래 없는 영화는 적적한 감을 주며 대화극과 다름이 없습니다. 영화가 참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훌륭한 영화가 되려면 반드시 좋은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김일성이 내린 '영화와 음악에 대한 교시'의 내용이다. 이 어처구니 없는 교시가 나온 뒤부터 모든 영화에는 무조건 주제가를 붙여야 했다. 한 개인의 느낌이 '교시'라는 이름의 법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주제가가 있으면 작품의 템포가 처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영화에든 무조건 주제가를 붙이니 시대착오적인 졸작이 나오는 큰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춘향전'에 대해서 김일성은 "춘향전은 두 계급 간의 남녀의 사랑을 취급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교시를 내렸다. 이 교시로 인해서 북한에서는 하루 아침에 ‘춘향전’ 제작이 금기사항이 되어버렸다. 우리 민족 최대의 고전에 족쇄가 채워진 것이다.

그러나, 그 후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1980년에 천연색으로 ‘춘향전’이 제작되었다. 실로 20여 년만에 만들어진 사극이라서 그런지 미술이나 의상의 고증이 도무지 말이 아니었다. 어쩐 일인지 모든 남자 배우들의 상투가 볼품없이 작아서 아주 어색해 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나라 상투가 봉건적이고 야만적으로 보이니 일체 사진에 내지 말라"는 교시를 내렸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분장사는 물론이고 감독이나 촬영기사도 상투를 어떻게든 안 보이게 찍느라고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문화어'(평안도 말과 함경도 말을 합친 북한의 표준어)를 써야 하고, 삼각관계나 키스 장면도 찍을 수 없고, 강간 장면도 안 된다. 이런 금기들이 모두 김일성 교시에서 나온 것들이다. 우리 겨레의 귀중한 문화 유산 중의 하나인 판소리를 '쌕소리'라 하여 없애버린 것도 김일성의 말씀 한 마디였다.

김일성이 어부들에게 내린 교시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물고기를 가까운 바다에서도 잡고 먼 바다에서도 잡고 깊은 데서도 잡고 얕은데서도 잡고 큰 것도 잡고 작은 것도 잡아서 인민들에게 많이 공급하라."

하나마나 한 말을 뭐하러 하는지….

권력자의 한마디가 곧 법이 되는 사회에서는 좋은 예술이 나오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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