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평양을 제외한 북한의 지방 도시 기차역 앞에는 점장이들이 책까지 펴놓고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얼마전까지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1990년초만 해도 내놓고 점을 본다는 것은 사상적으로 크게 처벌될 수도 있는 ‘범죄’ 였다. 원래 북한은 모든 종교와 함께 점보는 것도 엄격히 금지시켰다. 평양에서 점을 봐주다 걸리면 바로 지방으로 추방됐다. 그러나 1995년 무렵부터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사람의 운명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점 보는 일이 공공연히 퍼져 나가게 됐고, 점장이들의 인기도 치솟게 됐다.
단속 나선 보안원도 "족집게"에 탄복
점쟁이들의 실력은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전해진다. 점점 소문이 나 유명해지면 돈은 잘 벌지만 인민보안성(경찰)의 감시를 받게 된다. 점을 봐주다 신고 당하면 인민보안원들이 달려와 잡아가지만 크게 처벌 받지는 않는다. 기독교인등 종교 사범들은 국가보위부에서 다루고 사상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점장이들은 대개 경제사범으로 처리된다. 덕천의 어느 유명한 점장이 할머니는 자기를 잡으러 온 안전원들의 관상을 보고 과거를 정확히 알아 맞추는 바람에 안전원들이 기가 질려 앞날을 봐 달라고 매달리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당간부들 중에도 점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관상-사주 복채론 양복천이나 고급술
결혼, 진학, 장사 등 크고 작은 일에 앞서 점쟁이와 먼저 상의하고 결정하는 일이 북한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손금, 관상, 사주 등을 주로 본다. 유명한 점장이들은 일반인들이 만나보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당간부나 돈 많은 사람들이 양복천, 고급술, 등을 주면서 점을 보기 때문에 웬만한 물건은 거들도 보지도 않는다. 보통의 점장이들에게 한번 점을 보는 데는 옥수수 한 되(1.5kg) 정도가 필요하다. 동네마다 점을 보는 사람이 한두 명씩은 있다. 평양에도 많은 점장이들이 활약하고 있다.
평양의 한 유명한 점장이 할머니의 이야기는 북한 주민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 1997년 어느 젊은 여인이 이 할머니로부터 “당신 남편이 곧 죽을 운명이다. 살리려면 알몸으로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아라”는 말을 들었다. 고민 끝에 이 여인은 그렇게 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이웃들이 직장의 남편에게 알렸고, 남편은 부인이 실성한 것으로 알고 놀라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날 남편 직장에서는 탄광에 노력 지원을 나가는 날이었고, 사고로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남편도 탄광에 갔으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았는데 부인 덕에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할머니는 신들린 사람으로 소문났다.
북한에서 점이 유행하고 있는 것은 최근 생활이 어려워지고 장래에 대한 불안이 늘고 있는데다 종교를 가질 수도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강철환기자 nkc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