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동원이라는 측면에서는 북한 영화가 세계에서 최고일지도 모른다. 돈과 연결되는 '흥행'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봤느냐만을 따진다면 아마도 단연 으뜸일 것이다. 당이 선정하는 영화는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보도에 따르면 김일성의 무장 항일투쟁을 그린 '조선의 별'은 40여만 회 이상 상영했고, 관람 연인원은 1억5000만명이 넘는다는 식이다.

현재 북한 전역에는 약 1000여개의 영화관이 있고, 각 공장이나 기업소 등 생산현장에는 영사 시설이 갖추어져 있거나 이동 영사대를 조직해서 영화를 전국적이고 체계적으로 상영한다. 또한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영화를 많이 방영한다.

북한에서는 계몽영화를 한 편 만들면 수백개씩 복사를 해서 전국의 각 지방과 기업소에 공급하는데, 대도시로 보내는 것은 컬러 필름으로 보내고 지방이나 농촌에는 흑백 필름으로 보낸다. 물자 부족 때문이다. 그러나 김일성 관계 극영화나 기록영화 등에는 반드시 미제 코닥 필름 아니면 일제 후지 필름 같은 고급 필름을 사용하며, 현상도 서독이나 일본 등지에 보내서 한꺼번에 수백편씩 만들어온다.

한국에서는 과거 박정희정권 때 내가 감독한 '상록수'를 16mm로 많이 떠서 각 지방에서 상영하여 '새마을 운동'의 기폭제로 삼은 일은 있지만 북한에서처럼 적극적으로 활용한 적은 없다.

가족끼리의 휴가도 없고, 특별한 오락도 없는 북한 사람들에게 영화는 가장 대중성 높은 오락이다. 그러나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영화는 "인민을 가장 효율적으로 교양화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진 사상 무기요, 철저하게 공부해야 하는 학습자료다. 따라서 영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투쟁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영화 실효투쟁'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조직과 직급, 학교별로 '영화학습조'라는 것을 만들어 빠짐없이 영화를 보고 학습하도록 하는 것이 '영화 실효투쟁'이다. 한 편의 영화를 학습하고 나면 학습조별로 그 영화에 나온 인물들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 영화 주인공들의 생활과 자기들의 생활을 비교, 반성하면서 새로운 결의를 다진다. 그리고 "우리도 저 주인공처럼 살며, 일하자"는 '영화 주인공 따라 배우기' 운동으로 이어진다.

영화에서 주요 대사를 뽑아 엮은 '명대사 수첩'과 영화주제가를 수록한 '주제가 수첩'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직장별로 대사 외우기 시합, 주제가 부르기 시합을 시켜 우수팀이나 개인에게 상을 주기도 한다.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이라는 것이 한결같이 김일성과 당에 충성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그것을 따라 배워야 하니, 참으로 엄청난 우민(우민)정책이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북한쪽의 시각에서 그린 영화 '월미도'의 주제가 가사는 이런 식이다.

"살아도 그 품 속에 / 죽어도 그 품 속에 / 언제나 사무치게 불러보는 이름 / 아아, 어머니라 부르는 나의 조국이 / '김일성 장군'의 품인 줄 / 나는 처음 알았네"

이런 노래를 '부르기 시합'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그야말로 '투쟁'이다. 영화의 파급효과가 이렇게 막강하기 때문에 북한의 모든 영화는 김정일의 손을 거쳐 기획, 제작, 평가, 배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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