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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돈… 돈… 돈/ '외화와 바꾼돈표' 인기화폐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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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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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평균 월급(100원)의 5배에 해당하는 500원권 지폐가 1998년 북한에서 발행됐다. 남한에서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을 100만원으로 잡는다면 500만원짜리 지폐가 나온 셈이다. 이전까지 최고액권은 100원짜리였다. 500원권 발행의 정확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실질적 인플레와 함께 돈의 씀씀이가 커졌음은 분명하다.

사회주의사회인 북한에서 종래 돈은 큰 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년간 경제난으로 배급체계가 허물어지면서 돈의 중요성이 부쩍 커졌다. 배급경제에서 화폐경제로 옮겨가는 형국이다.

북한에는 두 가지 돈이 있다. 북한 원화인 일반화폐와 외화와바꾼돈표(이하 바꾼돈)라는 특수화폐가 그것이다. 북한내에서 외화는 원칙적으로 무역은행에서 바꾼돈과 공식 환율로 바꾸어 사용해야 한다. 고정환율제로 1달러가 2.15원 선에서 거의 고정돼 있다. 1979년부터 도입된 바꾼돈은 원래 사회주의 국가의 화폐와 교환하는 적색 바꾼돈과, 달러나 엔과 바꾸는 청색 바꾼돈이 있었으나 사회주의권 붕괴 후인 1995년 적색 바꾼돈은 폐지됐다.

돈은 시장에서 통용된다. 북한의 시장은 국영상점과 외화상점, 그리고 장마당(농민시장)이 있다. 상품의 질과 양이 월등히 좋은 곳은 외화상점. 이곳에서는 바꾼돈만 통용된다. 장마당에서도 북한 원화보다는 바꾼돈이 훨씬 인기다. 외화로는 무엇이든 살 수 있지만 원화로는 살 물건이 별로 없기 때문. 공식적으로는 바꾼돈과 원화가 동일한 가치를 갖지만 실제로는 50~100배로 암거래 되고 있다. 북한의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원화가 아니라 바꾼돈, 즉 외화인 것이다. 시골에까지 집집마다 긴급시를 대비해 바꾼돈 약간씩은 준비해 놓고 있는 현실은 외화의 위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다.

함흥 역전 외화 상점 앞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이중 상당수가 암달러상이다. 이들은 중국 상인 등으로부터 외화나 바꾼돈을 사들인 뒤 북한 주민들에게 원화로 되팔아 시세차익을 남긴다.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암달러상의 수익이 늘어난다. 당국에 발각되면 엄한 처벌을 받게 되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마련돼 있다. 이들은 대개 폭력조직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폭력조직은 감독기관인 보안성(경찰) 등과 연계돼 있다.

사정이 이러니 이념과 현실의 충돌도 불가피하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르는 한 제대군인이 평양의 외화상점에서 원화 100원으로 물건을 사려다 퇴짜를 맞자 “수령님의 초상이 들어있는 돈을 왜 푸대접하냐”며 소동을 일으킨 적도 있다. 100원짜리 돈은 고액권에 속해 갖기도 어렵거니와 가지고 있더라도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 지폐에 도안돼 있는 김일성 주석의 초상이 구겨지기라도 하는 날엔 경을 치게 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사채놀이도 성행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간에는 이자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외화를 빌리려면 보통 연 20~30% 정도의 이자를 주어야 한다. 전문 사채꾼인 경우 한 달에 3~5할까지의 고리를 받기도 해 자칫 집까지 날리기도 한다. 원칙적으로 집의 소유권은 개인이 가질 수 없지만 가구주의 명의를 바꾸는 방법 등으로 주거권을 차지하는 편법이 동원되고 있다.

북한은 1947년 12월 첫 화폐개혁 이후 1992년 7월 화폐교환까지 전후 4차례 화폐개혁 또는 화폐교환을 단행했다. 가장 최근인 1992년 화폐교환의 경우 당초 취지는 장롱 안에서 잠자고 있는 뭉칫돈을 끌어내 산업자본화하자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원화의 가치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가구당 399원까지만 신권으로 교환할 수 있고, 나머지는 예금으로 처리했는데 3만원 이상은 아예 교환해 주지 않았고 예금으로도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거금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엄청난 재산을 날려 버렸다. 화교나 재일교포의 피해가 특히 컸다. 이때 돈을 자루에 넣어 저울에 달아 파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이후 중국화교나 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원화는 필요한 만큼만 갖고 나머지는 가능한 한 외화나 바꾼돈을 소지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1998년부터 평양 고려호텔과 같은 특급호텔에서는 크레디트카드를 취급하게 되었다. 남한 사람의 크레디트카드는 잘 받지 않아 대표단으로 간 기자들이나 정부관계자들도 카드를 쓸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주 드나드는 기업인들의 경우 써볼 기회도 있었는데 수수료 때문에 꺼리는 것 같다는 얘기가 들린다. 지난 8월 평양에 다녀온 한 기자는 고려호텔 서점에서 달러로 책을 샀는데 센트가 준비돼 있지 않아 거스름돈 대신 그림엽서를 받았다. 북한산 ‘영광’ 담배를 대신 받은 기자도 있었다. 거스름돈보다 값이 더 나가는 물건을 덤으로 받기도 하고 덜 나가는 물건을 받아야 할 경우도 있었다.

일반주민이 목돈을 만지려면 집에서 개나, 닭, 토기 등을 키워 장마당에 내다 팔아야 한다. 염소나 돼지 등은 더욱 값이 나간다. 100kg짜리 중돼지 한 마리면 1500원, 개 한마리에 500~800원 정도 하기 때문에 자식들 시집 장가 보내려면 수년간 가축을 키워 내다 팔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모은 돈은 바꾼돈으로 교환해 외화상점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한다.

북한 일반주민들이 외화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1985년 경부터. 그 때까지 지방이나 농촌에서는 바꾼돈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1980년 초부터 재일교포들이 북에 있는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했는데 이들을 위한 외화상점이 평양에 등장하면서 외화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부터는 전국에 외화벌이사업소가 생겨나 외화바람을 선도하기도 했다. 이후 어느 농촌구석에도 바꾼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북한에서 직접 외화를 만질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해외 출장을 나가는 사람들과 해외에 친척을 둔 가족들, 그리고 외화벌이 일꾼이 그들이다. 외화벌이 일꾼들은 달러나 엔을 직접 만질 수는 없지만 바꾼돈은 얼마든지 소유할 수가 있어 보위부나 보안성, 검찰의 우선 주시 대상이기도 하다. 원칙적으로는 해외로부터 송금을 받거나 해외로 나가는 사람 외에 외화를 소유하는 것은 곧 국가재산 횡령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워낙 외화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라 감시기능이 무색해져 버렸다.

북한 당국은 최근 '외화와바꾼돈'을 폐지할 것으로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997년 나진-선봉 경제무역지대에서 우선 폐지했고, 1999년 3월에는 외국인의 경우 직접 외화로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돈이 경제생활의 전면에 등장한 최근 북한상황에 대해 한국은행 북한경제팀의 박석삼 조사역은 "시장경제라고 할 수 있지만 건강하지 않은 시장경제이기 때문에 시장의 효율성 못지 않게 암시장의 비효율도 높다. 분배의 형평성이나 생산과 소비의 조절기능이 왜곡될 수 있으므로 경제 전반으로 보면 충격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진단하고, "합리성을 가진 정부라면 현재의 시스템을 고쳐 나가려는 적극적으로 노력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김미영 객원기자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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