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화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북한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남한 사람에게 북한 영화는 빨간 영화, 이상한 영화, 살벌한 영화, 촌스러운 영화 등의 느낌으로 남아 있다." (김영훈 '북한 영화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사진설명 : ◇신상옥 감독이 그린 괴물 불가사리 스케치

이런 고정관념은 우리의 시각에서 북한 영화를 파악하려 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반대로 북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정된 시각을 가지고 남한의 영화를 본다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한국에서 일반에 개봉된 북한영화 제1호인 '불가사리'가 흥행에 참패한 것도 이런 식의 고정관념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식의 고정관념이 확산되면 문화 교류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는 바람직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영화는 그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불가사리(불가살)'는 내가 북한에서 탈출하기 전인 1985년 12월에 완성한 영화다. 주자막에는 '기획 신상옥, 감독 정건조'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내가 만든 작품이다. 나에게는 추억이 많은 작품이다.

북한 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한 시도로 홍콩에서 무술 감독 팀을 초청하여 '홍길동'을 찍었고, 일본에서 특수촬영의 1인자인 나까노(중야)감독과 '고지라' 역을 맡았던 배우 등의 특수촬영팀을 초청하여 만든 것이 괴수 영화 '불가사리'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민화를 소재로 한 '불가사리'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상징적 구조로 꾸며져 있다. 평론가들은 주로 계급투쟁의 측면에서 해석하려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말하려고 한 것은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강대국들의 '핵무기 경쟁'에 대한 경고였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생각하면, 이런 영화를 북한에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다.

김정일은 이 작품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불가사리는 농민의 편이므로 소 같은 모양을 해야 이치에 맞는다고 지적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이 작품은 건축중이라 천장이 뚫려 있는 신필림 촬영소에서 찍었다. 촬영소 규모는 컸지만, 특수촬영에 필요한 물자들이 너무 부족해서 애를 먹었다. 스티로폴 같은 간단한 것조차 없어서 일본에서 가져다 써야 했다. 석유화학 공업 생산과정에서 값싸게 얻어지는 이 물질이 북한에서는 생산되지 않는다.

'불가사리'는 지난 1998년 동경에서 일반에 개봉되어, 헐리우드의 대작인 '고질라'보다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북한 영화라는 점이 우선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현란한 시각효과의 디지털 시대 관객에게 사람이 인형속에 들어가 연기하는 소박한 아날로그식의 표현이 오히려 인간적 매력을 주었다는 평이었다. 헐리우드 영화에 중독된 우리 관객들에게는 그런 '인간적 매력'이 매력으로 느껴지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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