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속에 다듬어지고 담금질되면서 우리의 언어생활을 더욱 윤기 있고 감칠맛 나게 하는 것 가운데 속담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속담도 분단 반세기를 겪으면서 남북한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우선 같은 의미이면서도 표현이 다른 속담이 적지 않다.

흔히 "마누라 자랑, 자식 자랑 팔불출"이라는 하는데 북한에서는 "녀편네 자랑 온 머저리, 자식자랑은 반 머저리"로 통한다. 같은 자랑이라도 마누라 자랑이 더 큰 흉이 된다는 얘기일까.

뭐든지 일반화하기 좋아할 때 "경주 돌이면 다 옥돌이냐"고 핀잔하는데 이럴 경우 북한에서는 "강계 색시면 다 미인인가"라고 타박한다. 남남북녀라고 하지만 미인이라면 단연 강계미인이 첫 손가락에 꼽혔던 까닭이다.

남한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울릉도 호박엿이 있다면 북한에는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른다"는 산천어국이 있다. 말만 들어서는 산천어국 맛이 한 수 위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말하기에 따라 달리 들릴 수 있다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가 "탁해 다르고 툭해 다르다"로 표현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도 쓰이기는 하지만 그 보다는 "귀맛이 좋아야 입맛이 달다"를 더욱 즐겨 쓰고 있다.

엉뚱한 화풀이를 꼬집는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읍에서 매맞고 장거리에서 눈 흘긴다"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꼬집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아이보다 배꼽이 더 크다" 또는 "발보다 발가락이 더 크다"로 표현된다.

해방 이후 새로 생긴 것으로 북한사회의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 속담도 제법 눈에 띈다. "사과족이 되지 말고 도마도(토마토)족이 되라," "고양이 뿔 외에 다 있다"가 대표적 사례.

사과족은 겉은 붉지만 속은 흰 사과의 생김에서 유래한 말로 안팎이 다른 사람, 이른바 '동요계층'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반면 도마도족은 안팎이 모두 붉은 진짜배기 사회주의자를 상징한다.

고양이는 원래 뿔이 없는 동물인데 고양이 뿔 외에 다 있으므로 "없는 것 없이 다 갖췄다"는 뜻이다. 식량난이 악화되면서 그에 편승해 활성화된 장마당의 풍경을 함축적으로 대변한 말이다.

일찍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속담을 이용해서 적을 비꼬아야 한다. 속담은 적대계급을 야유·비유하는데 편리한 유산"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남북관계나 대미·대일관계가 냉각됐을 때는 으레 전투적이고 빈정거림이 강한 속담이 자주 등장한다.

"개들은 짖어도 행렬은 간다." 북한은 이를 미국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말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들의 전매특허로 만들었다. 특히 핵·미사일문제 등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누가 뭐라 해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방편으로 자주 회자됐다.

어이없고 가소롭다는 의미로 "소가 웃다가 꾸레미 터질 노릇," "달보고 짖는 개소리," "삶은 소가 웃을 일" 등도 같은 맥락.

이 밖에 시대착오적이라는 뜻의 "혁명의 수레바퀴를 거꾸로(뒤로) 돌린다," 요령부득으로 덤비는 모양을 비겨 일컫는 "술덤벙 물덤벙," 자기 재능보다는 환경과 조건을 탓하는 "총 쏠줄 모르는 사람이 총타박만 한다," 잔뜩 찌푸린 얼굴을 빗댄 "설익은 산살구 먹은 상" 등도 단골 메뉴가 된 익숙한 표현들이다.

김광인기자/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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