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남북관계를 교류·협력 관계라고 당국자들은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교류·협력이란 상호 인정하고 이해하며 존중하는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북한은 우리를 일방적으로 꾸짖고, 지시하고, 트집잡는 일이 적지 않았다. ▶엊그제 판문점에서 열린 제1차 군사 실무회담에서도 그랬다. 모처럼 열린 회담에서 북측은 경의선 복원에 따른 실무문제 논의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남측의 최근 군사훈련을 걸고 들며 ‘전쟁연습’이라고 격한 소리로 비난했다. 자기들은 최근 가장 큰 규모의 군사훈련을 한 처지이면서도 말이다. ▶장충식(장충식) 적십자사총재 인터뷰 파문은 남측이 알아서 긴 대표적인 사건이다. 북측은 장 총재의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 내용을, 그것도 발간된 지 한 달이 훨씬 넘은 것을 문제삼아 “그를 교체하라” “그가 있는 한 이산가족 추가상봉은 없다”며 평양방송을 통해 협박했다. 그러자 한적(한적)과 통일부는 ‘상부의 지시’를 받아 본인도 모르게 사과성 밀서(밀서)를 보냈다가 북측이 공개하는 바람에 우리측은 톡톡히 망신만 당했다. ▶우리정부가 고분 고분 말을 듣는 것에 재미를 붙였는지 이번 2차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북한은 또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내렸다. 이산가족 상봉장 부근에 장 총재는 얼씬도 하지 말라며 경고서신을 보낸 것이다. 통일부 당국은 그런 일 없었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으나 남북연락관 접촉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모양이다. ▶그런 탓인지, 장 총재는 ‘이산 상봉’을 하루 앞둔 29일 오후 돌연 일본으로 출국해버렸다. 사할린 동포 문제 때문이라는 게 공식 설명이나,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30일 만찬 주재자는 장총재’라는 게 적십자사 관계자들의 말이었다. 이번에도 ‘북한 지시’ 때문이란 의심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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