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활동제한 조치’를 언론에 알렸다고 해서 황장엽씨와 김덕홍씨의 보직을 하루 만에 해임하고 신변안전보호를 특별관리에서 일반관리로 바꾸겠다고 통보한 처사는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졸렬한 처사이며 정부기관으로서는 취할 수 없는 감정적 보복행위다. 국정원은 지금까지 황씨 일행의 대외접촉을 제한하는 등 특별관리한 것은 그들이 북한의 집중 테러대상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제 방출하는 것은 위험이 없어졌다는 말인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해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것은 국가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며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땅에 떨어뜨린다.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그들이 대한민국 시민이 된 이상 시민으로서 갖고 있는 ‘기본자유’를 향유하도록 보장하라는 것이다. 더구나 황씨는 북한 권력핵심부에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 체제를 누구보다 잘 알 뿐더러 그의 망명은 남한체제가 북쪽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몸으로 입증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그의 견해가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또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그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그것이 알려졌다고 해서 통일정책연구소 직책에서 해임하고 신변안전 보장의 격(격)까지 낮추겠다고 하는 것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오만한 처사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가장 중시하겠다는 지금의 정부가 취할 태도는 더욱 아니다. 더욱 불쾌한 것은 북한이 황씨를 아주 싫어한다는 것을 당국이 떠들고 다니는 점이다. 국정원의 행동은 북한이 중요하며 황씨정도는 버려도 된다는 발상에서 나오는 것 같다.

물론 손해보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접촉과 교류를 하다보면 북한이 변할 것이라는 현정부의 인식과, 봉건적 수령체제인 북한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북한의 민주화는 요원하다는 황씨의 생각에는 커다란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황씨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면 다수 국민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황씨 말대로 국민이 심판할 문제다. 국정원은 지금이라도 신변안전보장 방법을 원상대로 회복하고 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체제의 장점을 북한에 알리는 길이며 우리사회가 명실상부하게 인권과 민주화를 보장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조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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