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그동안 자신의 소신을 밝히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방해를 해왔다는 황장엽씨의 성명은 충격적이다. 그 성명에 따르면 국정원은 현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자신의 글을 발표하지 못하게 했으며 언론과의 인터뷰도 막았다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후 그가 현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견해를 탈북자 소식지인 ‘민족통일’에 발표하려고 했으나 국정원의 간섭으로 그의 이름대신 ‘편집부’이름으로 발표되었다고 한다.

또 지난 10월에는 ‘탈북자 동지회 내부 교양자료’라는 제목의 통일문제에 관한 문답(문답)을 적어 250부 발행했으나 국정감사 과정에서 황씨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국정원측이 배포를 중단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황씨는 국정원측이 지난 16일엔 자신들을 불러 자신들이 현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고 심하게 질책했으며 정치인들과 언론인 접촉금지, 외부강연 금지,‘민족통일’ 발매금지 등의 조치까지 취했다고 주장했다.

황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중대한 문제다. 그것은 김대중 정부가 북한을 비판하는 모든 언행에 대해 족쇄를 채우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정원은 황씨의 외부활동과 기고(기고)에 대해 당국이 여러가지 제약을 가하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그런 일이 없다고 발뺌했으며 황씨의 활동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이번 성명으로 그것이 완전한 거짓말로 드러났다. 황씨는 이번 성명에서 현정부의 대북정책과 다른 자신의 통일운동이 어느 것이 옳은지에 대한 심판을 받기 위해 국정원의 간섭에 구애됨이 없이 언론과의 공개적인 접촉을 하고 민간차원의 북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비장한 심경까지 밝혔다.

“밥얻어 먹으러 남한에 온 게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심각한 불만을 토로했던 황씨가 이번에 발표한 성명은 자신의 통일운동에 대한 몸부림의 하나로 이해된다. 그가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한 것은 바로 자신의 통일운동에 대한 국민의 의사를 묻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김정일 수령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 무조건 대북지원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황씨의 주장에 대한 판단은 국민몫이다. 그러나 국정원, 나아가 집권층이 황씨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공개활동을 제약하고 방해하는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황씨도 이 나라에 온 순간부터 민주시민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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