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BBC방송과의 회견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기아와 전쟁의 공포에서 해방시켜주는 것도 중요한 인권문제’라고 말했다. 우리는 정부가 남·북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하는 그 고충만은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인식의 측면에서 북한 인권문제의 핵심을 ‘억압’ ‘탄압’ ‘기본권 부재’ ‘이견(이견) 불용납’ 같은 것에 두지 않고 ‘기아’와 ‘전쟁공포’에 두는 논법에만은 찬성할 수 없다.

‘기아’는 북한이 잘못된 농업정책으로 자초한 것이고 ‘전쟁공포’는 6·25와 아웅산, KAL기(기) 폭파의 악몽에 시달리는 우리 남쪽에서 더 심하게 느껴온 것이다. 때문에 우리 남쪽의 자유민주적 인권기준에 따라서 북한 인권현안을 규정할 경우엔 뭐니뭐니 해도 북한의 가혹한 정치범 처우,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북한주민들의 신체·양심·표현·거주이전·여행·집회·결사·신앙의 자유 같은 것을 우선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과거 유신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안보와 경제발전 등 민족의 생존이 곧 인권…”이라며 당시의 김대중씨 같은 인사들의 ‘보편적 인권’ 논리를 억압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던 김 대통령이 오히려 북한의 경우 “기아와 전쟁공포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곧 인권…”이라며 그 시절 인권논리와 비슷한 논법을 취하고 있으니 참으로 헷갈리고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김 대통령은 바로 박정희씨의 그런 차별적 인권관(관)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면서 어떻게 북한의 인권참상과 관련해서는 정반대의 잣대를 적용하는지 선뜻 이해할 수 없다. “김정일 위원장과 공동수상했으면 더 좋았을 것… 미안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한데 대해서도, 노벨 평화상을 정말로 그렇게 인식한다면 그것은 잘못 보는 것이다. 차라리 “북한인권에 대해 할말은 많으나 언급을 유보하겠다”고 하는 편이 나았을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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