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법대 최종길 교수는 인권탄압이 극에 달했던 유신 초기에 북한 공작원으로 의심되는 사람과 중학교 동창이라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가 사망했다. 중앙정보부는 최 교수가 “간첩임을 자백하고 자살했다”고 발표하고 장례도 서둘러 치르도록 했으나, 당시에도 정부발표를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제 그의 27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27년이 지나도록 그의 사망에 대해 공식적 재조사를 한 적이 없어 최 교수는 아직도 ‘간첩’으로 남아 있으니 안타깝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런가 하면 민주화 조치가 어느 정도 취해진 6공 시절에 발생한 몇몇 유명한 의문사의 경우는 수사기관의 조사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의문사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정말로 당시 수사기관이 진실을 은폐했는지, 아니면 정권 자체에 대한 불신이 워낙 높아 결과적으로 의문사가 되고 말았는지 그 진상은 알 길이 없다.

최근 지난 1969년 이후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의문사를 규명할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해서 활동에 들어갔다. 이로써 최종길 교수, 75년에 사망한 사상계사 발행인 장준하씨, 그리고 학생운동과 관련해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망한 사람들의 정확한 사인(사인)을 규명할 수 있게 됐다.

위원회의 조사결과 부당한 공권력 개입으로 인한 죽음으로 밝혀지면 위원회는 관련자를 고발하게 된다. 진상규명위원회 양승규 위원장이 말하듯이 의문사 규명은 의문사를 당한 당사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보다 큰 의미가 있다. 진상규명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고 이로써 국민화합을 이루자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사 규명이 반드시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흐른 뒤라 진상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물적 증거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수도 있다. 결국 살아 남은 관련자들이 역사와 양심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진실은 영원히 감추어질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번 조사활동으로 의문사를 둘러싼 논란이 완전히 해소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잘못을 참회하고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한 사람들을 관용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