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의 번영과 안보협력’을 주제로 한 제3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가 ‘한반도 평화에 관한 서울선언’을 비롯, ‘아시아·유럽 협력체제(AECF) 2000’, ‘의장 성명서’ 등 3개 문건을 채택하고 2일간의 일정을 모두 끝냈다. 아시아 10개국과 유럽연합(EU) 16개 회원국(EU 집행위 포함) 정상들이 참석, 정부수립 이후 최대의 외교행사가 된 이번 서울회의를 이렇다할 대과없이 치러낸 것에 대해 우리 모두 일단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이번 서울회의의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한반도 평화에 관한 서울선언’이다. 25개국 정상들은 ‘서울선언’을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와 세계평화의 밀접한 연계성을 강조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및 북·미관계 개선을 환영하고, 나아가선 북한과 ASEM 회원국들 간의 관계 개선을 촉구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국제적 ‘제어장치’를 한층 더 강화해 주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처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ASEM의 기여를 다짐하면서 북한의 인권이나 대량 살상무기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들리는 말로는 중국 등 일부 국가들이 반대하고, 우리 정부도 북한에 대한 자극을 피하기 위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하는데, 유럽 국가들의 주장대로 북한을 직접 지칭하진 않더라도 ‘대량살상 무기의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 정도는 넣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것은 장차 있을지도 모를 북한의 ASEM 가입을 위해서도, 그리고 가입 이후 회원국으로서의 건설적인 역할과 의무 이행을 위해서도 필요했다고 본다.

이번 회의에선 유라시아 초고속 통신망 사업을 비롯해 모두 23개 사업을 채택하는 등 구체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ASEM이 여전히 그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내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ASEM이라는 것이 원래 아무런 구속력 없이 그때 그때의 국제 및 지역이슈를 놓고 상호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비공식 포럼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ASEM이 정상들 간의 ‘고급 사교장’으로 치부되는 비판을 받을 소지도 크다. 일부에선 그런 서울회의 준비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물적, 인적 자원을 쏟아 부었다는 비판도 일고 있는데, 정부는 이점 겸허히 받아들여 값진 경험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02년 덴마크에서 열리는 제4차 회의 때부터는 일정한 의제를 정해 이제까지와는 달리 내실있고 심도있는 토의를 갖겠다고 하니 기대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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