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북한에 무상지원했던 비료 가운데 민간 자발모금분이라고 발표했던 비료의 대부분이 사실은 정부가 각 기업에 강제할당한 자금으로 충당했음이 드러나 대북경협자금의 투명성이나 공기업의 예산전용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작년 정부차원에서 450여억원어치(11만5000t)의 비료지원과는 별도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접촉을 위해 대북비료 등은 무상지원키로 했다”고 밝히고 “그 중 상당부분은 민간모금으로 충당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민간모금에 나섰으나 실적이 부진하자 정부는 현대·삼성 등 5대재벌, 가스공사 등 4대 공기업을 대상으로 강제모금에 나섰던 것이다.

공기업의 감독권과 인사권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정부가 이같이 예산전용 등 무리하고 불합리한 지시를 하는 경우 공기업들은 꼼짝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이 같은 방만한 경영을 통해 공기업의 부실이 누적되어왔음은 잘 알려진 얘기이다. 이렇게 공기업들이 행정부 각 부처의 쌈지 돈처럼 공공자금을 전용하고 나눠먹기식 경영을 하면서 공기업의 구조조정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는 일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대기업들이 부담한 준조세는 업체당 평균 74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들이 부담한 국세의 1.2배이며 지방세의 20배 규모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이다. 대기업들에 대한 이 같은 준조세 부담은 기업들의 경쟁력 저하와 함께 물건값의 인상으로 전가되어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대북경협자금마저 준조세로 부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같은 공기업과 재벌들의 준조세 부담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대북경협 지원에 있어서의 정부의 투명하지도, 정직하지도 못한 자세와 정책이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얼마전 대북 식량차관을 제공하면서 정부는 회의내용을 숨기고 쉬쉬하거나, 공식적인 회의나 절차도 생략한 채, 그리고 배급의 투명성도 확보하지 못한 채 서둘러왔다. 특정 TV의 북한내 방송도 재벌기업에서 모금한 돈을 북한에 주고 얻어낸 것이다. 이처럼 북한에 주는 지원과 돈을 대부분 대기업들에 강제 할당해서 얻어내는 한 기업의 구조조정은 아예 물건너 간 것이고 우리 경제는 점차 위축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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