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신문이 정상회담 후 3개월만에 다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들고 나왔다. 정부는 지금까지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에 대한 이해를 표시하고 통일 이후에도 주둔하는 것을 양해했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기조 하에 “한반도에서 이제 전쟁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런 말을 들은 바 있는 우리로서는 이번 노동신문의 미군철수 주장으로 심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본질적 입장’은 변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만 일방적인 판단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금할 수 없다.

물론 공산주의 권력의 경우 혁명적 원칙과 실제적 행동이 편의에 따라 종종 다르고, 노동신문의 논평 하나만 가지고 전체를 평가하기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또 이번 논평은 윌리엄 코언 미국 국방장관과 모리 요시로(삼희랑) 일본 총리가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통한 군사적 균형유지를 논의한 것과 관련해, 주로 한반도 통일 이후의 주한미군을 문제삼았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 시점에서의 전면적인 미군철수를 주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은 본래 교조적이고 ‘혁명적 정통성’을 중시하는 권력이기 때문에 그러한 권력의 기관지가 미군철수를 주장하고 나섰다는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다. 당(당)이 최고 권력기관인 북한에서 노동신문의 입장은 바로 당의 입장이자 김정일 위원장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논리도 과거와 하나도 다른 것이 없다. 주한미군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교란하고 전쟁위협을 조성하는 주된 세력’이며 ‘남조선 인민들의 불행과 고통의 화근’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 구속력있는 공식문서도 아닌 김정일의 공개되지 않은 ‘말’만 믿고 북한의 ‘미군주둔 양해’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김정일이 북한의 절대권자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의 태도가 언제라도 자의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그런 문제는 시간을 두고 신중한 자세로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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