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남북경협 실무회담에서 합의했던 ‘남·북한 식량차관 제공에 관한 합의서’가 뒤늦게 발표됐다. 왜 합의때는 쉬쉬 했다가 이제서야 밝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합의서에 따르면 남측은 외국산 쌀, 옥수수 등 50만t을 차관으로 제공하며, 차관 상환기간은 차관제공 후 10년 거치 기간을 포함하여 30년에 걸쳐 갚도록 하며, 이자율은 연 1.0%로 한다는 조건이다.

정부는 또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이 차관형식의 50만t 지원과는 별도로 외국산 옥수수 10만t을 추가로 무상지원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같은 무상지원 계획은 이번 ‘합의서’에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이번 실무회담도 결국 경협의 제도적 장치 마련보다는 대북 식량차관 문제만 논의하면서 북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더군다나 북측이 분배의 투명성을 보장한다고 했으나, 우리측 또는 국제기구 대표들의 현장확인 작업을 구두로만 합의했을 뿐이다.

상환에 있어서도 30년 동안 갚는다고 되어있지만 그것이 합의서대로 상환되리라 믿기도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이같은 무상지원이나 무상지원에 가까운 차관형식 지원을 연제까지 계속할 것이냐는 점이다. 북한의 식량난은 물론 최악의 가뭄과 태풍 등 자연재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다. 아무리 일해도 농민들에게 인센티브가 없는 영농법과 영농정책의 실패, 비료부족과 토지 산성화 등 북한농업의 구조적 문제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무조건 지원보다 북한농업의 구조적 회복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협력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북한당국도 중국 12억 인구의 식량자급을 가능케 했던 농업개혁 정책 수용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되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