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북(대북) 식량지원 정책이 투명하지도, 당당하지도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국내경제 여건에서 거액을 들여 대북 식량지원을 하려면 이러저러한 사정을 국민에게 소상히 밝히고 이해를 얻는 것이 순리이자 의무인데도, 그런 절차 없이 어물쩍 넘기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1차 남북경협 실무접촉에서 의제에도 없던 대북 식량지원 규모와 시기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합의를 해줬으면서도 이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발표된 ‘공동보도문’ 어디에도 식량지원 이야기는 없으며, 회담이 끝난 후 우리 측 수석대표의 언급에서 식량지원과 경협이 연계된 것 아니냐는 짐작만 하게 할 뿐이었다. 북측은 공동보도문에 식량지원 내용을 명시적으로 표현하자고 끈질기게 요구했으나 우리 측이 여론과 야당의 반대를 우려해 넣지 말자고 해서 빼게 됐다는 후문이다. 2차 장관급회담과 김용순 특사 방문과정에서 합의된 북한 식량지원 문제가 이번 회담에서 논의될 것이란 점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아무리 입장이 곤혹스럽더라도 합의된 내용을 소상하게 밝혀야 할 것 아닌가. 그렇지 않고 회담이 끝난 후 식량 50만t을 10월 중에 지원한다는 방침을 뒤늦게 흘리는 것은 정부가 술수를 쓰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국회동의 없이 남북협력기금에서 식량지원 자금을 지원하려는 것도 문제다. 물론 남북협력기금이 대북 지원사업을 위해 조성된 것이긴 하지만 이번 식량지원은 ‘차관’형태로 지원된다. 차관의 경우는 국회동의를 받아야 할 뿐더러 설령 차관형태가 아니더라도 국민의 동의를 받는 것이 정도(정도)다. 행정편의주의에 따라, 또는 국회동의가 만만치 않을 것 같으니까 남북협력기금을 활용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국민불만을 가중시킬 우려마저 있다. 지금같은 어려운 시기에, 그것도 남북간의 많은 회담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긴장완화나 ‘생사확인’을 향한 구체적인 확신도 미흡한 상태에서 “우리는 속절없이 끌려만 가느냐”는 여론을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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