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서구적 가치 척도의 상대성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 힌두교, 불교, 유교의 보편적인 요구들을 기독교 및 고대의 인본주의 이상들에 대한 부정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확장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으로서 환영했다. 이러한 확장과 풍요 없이는 괴테의 세계문학 구상은 생각할 수 없다.

이러한 구상이 가장 순수하게 실현된 것이 그의 ‘서동시집(Westoestlicher Divan)’인데, 그것은 ‘낯선 문화’를 충돌 없이 자기 것으로 만든 보기 드문 예이다. 괴테는 자기 문화에 대해 ‘낯선 문화’를 동등하게 맞세운다. 그의 가치 상대주의의 근저에 깔린 인본주의적 관용은 170년 뒤에 독일의 여류작가인 루이제 린저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게, 폭군 앞에 자발적으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에는 실업도 없고 마약과 부패도 없다는 루이제 린저의 주장은 냉소적으로 들린다. 그곳은 아이들을 굶어죽게 만들고, 위대한 영도자에게 맹세한 당은 다른 나라에서 마피아가 그렇듯이 처벌받지 않고 각종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이미 헤로도토스가 그녀를 잘 가르칠 수 있었을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민주주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옹호의 변(변)을 말했다. “나는 다시금 한 사람이 우리들의 주인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가장 훌륭한 사람을 이 자리에 앉힌다 하더라도 독재 정치는 그를 곧 그의 원래 신조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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