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에 있었던 전직 대통령과 3부요인의 청와대 오찬회동 대화록(청와대 공식발표)을 보면서 그래도 명색이 전직 대통령들인데 고작 그런 아부성 발언이나 하려고 청와대에 갔나 하는 서글픈 생각을 갖게 된다. 우리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거북한(?) 발언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이 상황인 만큼, 국회공전사태·의약분업문제·경제의 어려움·대출비리사건 등 국정의 난맥상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에 대해 무어라고 심도있는 얘기를 할 계제가 아니었을까 정도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청와대가 공식으로 밝힌 전직 대통령들의 발언록은, “(비전향 장기수 송환은) 대통령께서 한 수 위를 보시고 잘 결정한 것 같다”(전두환), “북한이 고려연방제나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게 된 것은 큰 성과다”(노태우)라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우선은 청와대 발표의 공신력 문제다. 동석했던 이만섭 국회의장이 청와대 발표문에 자신의 발언이 거두절미되고 왜곡됐다며 항의한 것을 보면 청와대가 입에 맞는 발언만 ‘취사선택’한 것 같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따라서 두 전 대통령의 발표문상의 발언만 갖고 따지는 것은 실상과 거리가 있을 수 있으나 본인들이 회동 후 따로 견해를 밝힌 것이 없는 만큼 우리로서는 그 발언내용을 달리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발언이 거두절미됐다면 그것을 밝힐 것을 전제로, 그런 수준의 발언이나 하려거든 청와대 회동에 대해 재고하도록 권고하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을 했어도 발표가 안 된다거나 현직 대통령 듣기 좋은 말이나 해야 하는 분위기라면 애당초 그런 모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긴 그들이 청와대 주인이었을 때도 비슷한 행사와 비슷한 제약과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을테니 거기에 익숙한 탓도 있겠지만 이제는 그래도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전직 대통령 아닌가. 정치원로 행세를 하려거든 할말은 하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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