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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평양가는 길’의 복병들 치적집착한 ‘양보’ 없어야 국민뜻 존중 ‘낮은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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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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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일 앞두고 있는 남북한 정상회담까지의 여정(여정)에는 많은 복병(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이 복병들은 다루기에 따라서는 회담의 성사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가장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복병은 회담의 의제(의제)이다. 이 의제를 둘러싼 남북한 당국과 미국과 한국 내 여론의 갈등이 표면화된다면 회담은 성사되기 어렵다. 비록 회담은 성사되더라도 별다른 진전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북한은 지난 십수년간 남북한 당국간 대화의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남한 내 ‘연북(연북)세력’의 자유로운 활동보장을 내세워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경제협력, 평화정착,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적어도 의제 또는 조건만으로 본다면 남북한은 동상이몽 상태에 있다.

회담이 결실을 보려면 북한이 세 가지 조건을 거론하지 않거나 ‘협의중’(pending)에 얹어놓는 편법을 쓰는 도리밖에 없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지금 북한의 조건을 들어줄 입장도 아니고 국회 다수세력도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 대통령이 수없이 강조해온대로 흡수통일은 물론 통일 자체를 현실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약에 믿음을 갖기 시작했고, 그렇다면 김 대통령과 대화해서 경협을 얻어내는 실리 쪽으로 돌아섰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왕 그럴 바에는 김대중 정권을 4·13총선에서 도와주는 것이 부담을 더 안겨주는 것이며 또한 ‘북한카드’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남북정상회담 발표를 총선 3일 전에 하도록 합의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총선 결과는 북한이 의도했음직한 방향으로 가지 않았고 북한은 그런 상황에서 대내정치적으로 회담의 득실을 다시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부정적이면 북한은 언제든 세 가지 조건을 의제로 들고 나와 회담을 깨려고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회담의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고 가장 위험한 복병이자 ‘장애물’은 바로 북한당국인 셈이다.

북한 못지않은 잠재적 장애물은 남한 내의 ‘너무 앞서 나가는’ 증후군들이다. 회담을 앞두고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이라든지 공안사범에 대한 사면·복권을 거론하는 것은 자칫 국내 여론을 부정적으로 몰고가 회담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엊그제 민주당 고위관계자 발언이 그 좋은 예이다.

회담이 성사되려면 ‘북한 비위 맞추기’ 따위의 기회주의성 발언이 자제돼야 할 것이다. 국내 보수진영도 같은 논리로 회담의 진행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는 그 어떤 양보도 묵과해서는 안되지만 융통성을 갖고 남북대화를 관찰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의 자세일 것이다.

미국 내의 여론도 장애가 될 수 있다. 미 국무부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주한미군 지위의 변화가능성에 대해 “주한미군 위상에 관한 아무런 변화계획이 없다”고 주한미군 문제가 의제가 되는 것을 간접적으로 거부하고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와 이 무기의 운반체제를 포함한 핵확산문제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며 또다른 ‘의제’를 제기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북한이 더욱 많은 무기를 생산하는 정책을 정당한 것으로 오인시킬 ‘도덕적 위험’도 뒤따른다”고 했고,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정상회담은 미국의 대북관계 개선노력을 김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인지 미 국무부는 지난 14일 미사일 기술이전을 뒤늦게 문제삼아 북한에 수출입 제재조치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 못지않게 중요한 ‘장애’는 김 대통령 자신이다. 김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은 그의 정치생애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일생일대의 이벤트다. 남북화해의 길을 연 대통령, 평양을 방문한 최초의 남쪽 대통령, 그리고 그것으로 노벨상까지 받을 수 있는 대통령― 그것은 한국의 정치지도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업적이다. 그러기에 그는 이번 회담에 그의 모든 것을 걸 것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가 무리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우리는 큰 불행을 맞을 수 있다. 저간의 보도를 보면 김 대통령은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고 대화에 부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상호주의를 고집하기보다는 양보할 것은 양보하려는 기운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한국의 미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한국을 그의 장중에 있는 ‘소유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북한과의 거래를 투명하게 하고 그 대차대조표를 국민에게 공개하며 대다수 국민의 의사를 살피고 존중하는 한반도 평화정착의 ‘심부름꾼’으로 자신을 낮추는 자세가 절대로 필요하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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