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방북 초청문제를 둘러싸고 집권측과 한나라당이 벌이고 있는 ‘진실’ 공방은 그야말로 황당하고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지난번 언론사 사장단 방북 때 박지원 문광부장관이 ‘한나라당의 요청에 따라’ 김정일 위원장에게 방북초청을 타진했다는 것이나, 한나라당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며 펄쩍 뛰고 있다. 그 후 김 위원장의 초청의사를 집권측이 한나라당에 정식으로 통보했는지 여부도 서로 어긋나기는 마찬가지다.

진상은 언젠가는 드러나겠지만, 우선 짐작되는 것은 이번 초청건(건)과 관련해서 집권측과 한나라당 사이의 사전대화는 불명확하고도 불충분한 것이 아니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수준임에도 이것이 우리쪽 최고 통치자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어 문제화됐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지난 17일 김대중 대통령이 학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북에 야당의 초청을 권했고, 현재 (이 문제가)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고 한 발언은 대통령으로서 할 성질의 것도 아니며 야당 당수에 관한 것인만큼 공개적으로 할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본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우리로서는 야당도 북을 보고왔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일반론에 머무르는 것이 보다 적절했을 것 같다.

보다 한심한 것은 북한이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집권세력과 야당이 서로 ‘했네 안했네’ 하면서 치고받는 추태를 연출하고 있는 점이다. 방북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서, 또 북한에 가는 것이 도대체 무슨 ‘훈장’이길래 이 야단들인지 도무지 생각있는 ‘어른’들의 취할 태도가 아니다.

국내정치를 ‘남·북’에 끌어들이거나, 반대로 북한변수를 국내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도 백해무익한 일이다. 과거의 이른바 ‘북풍’이 바로 그런 악례(악례)였다. 내용과 경위야 물론 다르지만 이번 사례도 국내정치가 북한변수에 교란당하게끔 전개된 것이라는 점에서만은 심히 불쾌하고도 불행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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