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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상봉 - 평양의 마지막 날 고 장기려박사 아들 장가용교수 노모 만나 “아버지가 한시도 못잊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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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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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50년만에 가족을 만나면 감정이 앞서는 것 아닌가. 오늘 하룻밤만이라도 같이 지내고 싶었다. ”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렸던 고(고) 장기려(장기려)박사의 아들 장가용(장가용ㆍ65) 서울대 의대교수. 평양방문단 지원 요원 자격으로 평양에 간 장 교수는 17일 어머니 김봉숙(89)씨를 만나게됐다는 통보를 받고는 평양 보통강 호텔로 달려갔다. 오전 11시쯤부터 3시간 남짓. 어머니 김씨는 그저 울기만 했다. “처음 만났을 때 아무 말 없이 우시는 그 마음 속을 자식이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습니까. ”

장 교수는 어머니를 부둥켜 안고 젖가슴을 만진 뒤에야 어머니를 만났음을 실감했고, 어머니는 응석받이로 돌아간 아들의 손을 잡고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지난 88년, 재미교포인 친척을 통해 받은 편지와 사진을 통해서만 되새겨온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이후 3~4차례의 서신왕래와 함께 어머니의 육성테이프가 전달되기도 했지만, 아버지 장기려박사는 아내를 기다리며 홀로지내다 95년 타계했다.

장 교수는 “저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라고 존댓말을 했다. 가슴이 아파진 장 교수는 1940년 서울역에서 어머니가 자기를 등에 업고 걷다 넘어져 시멘트 바닥에 뺨이 긁혀 피가 나자 5살이었던 자신이 어머니뺨을 어루만지던 일을 기억해 얘기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기억난다”고 말했다.

장씨는 어머니와 함께 북한에 남겨졌던 누이동생 신용(60)ㆍ성용(58), 남동생 인용(55)씨도 만났다. 인술을 펴온 장기려 박사의 영향을 받은 듯, 식료공장 연구원인 신용씨를 빼고 평북 강계에서 의사생활을 하다 작고한 큰 아들 택용씨나 세포연구를 하는 성용씨, 강계의학대학 교수인 막내 인용씨 모두 의료인으로 성장했다. 장 교수는 “훌륭히 일꾼으로 성장한 동생들을 보니 기뻤다”고 했다.

울음을 참던 장 교수는 어머니와 헤어져 보통강호텔을 나서고서야 눈물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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