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이산가족의 ‘감격적인 만남’은 3박4일 행사로 끝이다. 85년 첫 이산가족 상봉 때 평양에서 누나를 만났던 한 실향민의 말처럼 이들에게 주어졌던 1회성 혈육상봉은 그들에게 더 큰 고통만을 줄지 모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실향민의 절대다수가 이나마의 ‘혜택’도 못 받는 현실이다. 정부는 지난 72년 7·4 공동성명 발표 이후부터 줄곧 이산가족 생사확인, 서신왕래, 고향방문을 추진해 왔으나 북한이 호응해주지 않아 85년 50명 교차상봉 이후 이번에 겨우 각각 100명씩 상호교환한 것이 전부다. 이번 상봉 100명은 생존(추정) 실향민 80대 이상의 600분의 1, 70대 이상의 2600분의 1, 60대 이상의 400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번 상봉신청자를 기준으로 계산해도 760분의 1밖에 안된다.

이런 형편에서 겨우 100명씩의 일시적 만남을 두고 흥분하고 감동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 보면 처량한 노릇이다. 이나마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러한 1회성 행사는 전체 실향민들에게 오히려 아픔만 배가할 뿐이다. 또 한 번 만나고 난 후 편지 한 장 주고받지 못하고, 만남 후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인 못하면 그 만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실향민의 진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분위기 행사’일 뿐이다.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은 제도적으로 접근해서 모든 실향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먼저 생사를 확인하고 편지교환을 한 뒤 고향방문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자유왕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고령 실향민들의 평생의 꿈이 고향땅을 찾아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에 술 한 잔 올리는 것이다.

아울러 납북자 가족들도 이산가족과 똑같은 대우와 상봉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엊그제 이산가족이 만나고 있을 때 “월북자도 가족을 만나는데 우리도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납북자 가족들의 절규는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도 남는다. 500명에 가까운 납북자는 물론이고 국군포로와 6·25 때의 납치자 가족도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그리고 더 나아가 가족상봉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달성돼야 남북간에 ‘이산문제’가 실질적으로 다루어졌다고 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화해가 모색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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