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그룹은 북한측과 도로를 이용한 개성(개성) 관광과 서해안공단 건설 사업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개성공단 개발사업에는 최소한 10억달러가 소요되고 금강산 종합개발 사업에는 8억7000만달러가 추가로 더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의 대북사업에 필요한 중장기 자금은 1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현대측 분석이다. 하지만 개발사업을 담당할 현대건설이 심각한 자금난에 쫓겨 현대가 과연 대북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삼성그룹도 지난달 윤종용 전자부회장을 단장으로 한 30여명의 방북단을 파견하고 남포공단에 50만평 전자단지 조성사업 등 대규모 투자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사업의 내용, 규모, 진척도 등에 대해 자신있게 밝히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LG그룹도 총 10억달러를 투입해 휴전선 근처에 대형 물류센터를 세우겠다고 발표했지만 그룹의 지주회사 설립과 IMT-2000사업 등에 쫓겨 사실상 대북사업의 타당성에 대해 혼선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남북정상회담 이후 기업들은 대북 경협사업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정부가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정상회담의 결정인 만큼 어느 정도 참여와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무언의 중압감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게 요즘 기업의 분위기라는 것이다. 적어도 기업들에 관한 한 투자의 원칙과 논리가 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가장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효과가 기대되던 대북경협은 정상회담 2개월이 지나도록 혼미와 혼선을 빚고 있다.

무엇보다도 경협에 임하는 남북당국의 자세와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북한은 외부의 경제적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도 내부의 경제 개혁과 제도적 개선을 기피하고 있다. 중국이 20년전 경제특구로 지정했던 선전(심♥)과 주하이(주해) 등이 중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왔다는 사실을 북한은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합영법도 있지만 인민경제기획법을 만드는 등 이율배반적인 경제정책 운용으로 경제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울러 투자보장 이중과세 방지, 결제제도 정비 등 제도적 문제점 등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경협은 엄격한 경제논리로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남북한 당국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정치적인 의도에 바탕한 일방적인 원조와 시혜가 적지 않았다. 냉철한 손익계산 없는 무리한 대북투자도 계속됐다. 이는 남북 어느 쪽에도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당국은 또한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기구의 재정적 도움을 얻기 위해 미사일 개발 포기, 테러지원국 이미지 불식 노력도 꾸준히 기울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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