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한 사회는 일종의 ‘김정일 쇼크’ 현상에 빠져있는 느낌이다. 정상회담 자체가 반세기 만에 열린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오랫동안 깊은 장막뒤에 가려져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무대등장과 파격적 연기(?)가 남한은 물론 세계의 관객들을 함께 놀라게 만들었다. ▶모든 면에서 그는 거침없고 때로는 무례에 가까울 만큼 누구도 개의치 않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언변과 과장된 제스처를 한껏 과시함으로써 그가 모든 상황을 두루 파악하고 제어하고 있음을 내외에 극적으로 드러내 보였다. 그는 남북문제뿐 아니라 대미 대일 대러시아 관계 등 대외정세와 외교·군사·사회·문화 등 다방면에서 광범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비쳐졌다. ▶특히 남쪽 정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음’을 여기저기서 과시한 한편, 가요 영화 TV는 물론 승마와 프랑스와인 취미 등 개인적 관심사까지 숨김없이 털어놓아 솔직한 다변 성향을 노출하기도 했다. ▶때로는 너무 ‘솔직’해 “통일은 내 맘 먹을 탓”이라는 기상천외의 폭탄선언도 나왔고 미국이 “테러국 고깔만 벗겨주면 내일이라도 수교한다”는 외교방침도 서슴없이 공개했다. 심지어는 현대에 대해 개성단지 개발을 제의한 것은 “6·15 선언에 대한 선물”이라고도 밝혀 남쪽정부와 현대의 대북 ‘정경 합작’ 인상을 풍기기도 했다. ▶급기야는 공영 TV 토론에서 한 참석자가 “김 위원장은 남한에서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로 부각돼 있다”고 서슴지 않고 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대중성을 잘 꿰뚫고 있는 김정일은 6·15를 계기로 북한뿐만 아니라 남쪽에도 그의 팬클럽을 만들 좋은 찬스가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함직하다. 이미 남쪽은 긴장이 풀어지고 상황을 액면 그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는 적어도 남쪽에서는 절반이상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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